민심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은 몰랐다. 어제 실시된 20대 총선에서 집권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에 훨씬 못 미치는 122석에 그쳐 제1당을 더불어민주당(123석)에 내주면서 16년 만에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가 출범하게 됐다. 집권 3년여 만에 치러져 중간평가 성격을 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탄핵풍’이 불었던 2004년 17대 총선 이후 최악의 참패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1년 10개월이나 남았지만 조기 레임덕(권력누수)이 가시화했다. 경제와 안보 실정(失政) 책임은 야당에 미루고, 안으로는 공천을 놓고 계파 싸움에 몰두한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의 응징이다. 새누리당 안형환 대변인은 어제 밤늦게 “초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새누리당에 미래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 날”이라며 패배를 자인했다.
새누리당과 그 전신인 한나라당은 2007년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에서 져본 적이 없다.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다. 어지러운 정치판에서 친노(친노무현)·운동권 중심의 야당에 힘을 실어주면 국정운영이 파탄나지 않겠느냐는, 중도·보수 성향 국민의 ‘공포의 균형감’이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불패 신화’에 오만해진 집권세력의 독선에 마침내 국민은 회초리를 들었다. 새누리당은 국회 대표실에 ‘정신 차리자, 한순간에 훅 간다’는 배경판만 달아놓고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 기득권에 빠져 국정은 도외시하고 자신들의 안위만 염두에 둔 ‘웰빙 새누리당’에 국민이 철퇴를 내린 것이다.
중간평가에서 ‘탄핵풍’보다 더한 공천역풍
특히 친박(친박근혜) 충성분자를 꽂아 넣기 위해 ‘총선 결과에 개의치 않겠다’는 역대 최악의 막장 공천은 전통적인 지지층의 이반을 불러왔다. 이른바 서울 강남벨트와 텃밭인 부산과 대구의 지지층이 고개를 돌린 것을 박 대통령과 친박 핵심은 직시해야 한다. 전체 투표율은 58.0%로 지난 총선보다 3.8%포인트 높아졌지만 전통적 여당 지역인 대구 부산 등이 가장 저조한 것은 아예 투표도 하기 싫다는 의미다. 이번 총선은 야권이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새누리당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구도였다. 그러나 이번만은 박근혜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분노의 폭풍’이 불면서 야권 분열 구도가 맥을 못 추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의석수에서 새누리당에 근접하면서 선전(善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유권자가 수도권에서 더민주당의 손을 들어준 것은 결코 이 당이 예뻐서가 아니다. 집권세력이 미워서다. 특히 정통 야당을 자임하는 더민주당이 야권의 심장부인 호남과 정당투표에서 참패한 것을 친노패권주의, 운동권 정치에 대한 심판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는 호남의 지지 여부에 대선 출마와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었으니 약속을 어떻게 지킬지 궁금하다.
여야를 통틀어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던 문 전 대표가 하차한다면 차기 야권의 대선구도도 요동칠 수밖에 없다. 더민주당은 먼저 수권정당으로서 국민의 믿음을 얻는 데 주력해야 한다. 더민주당은 19대 국회에서 국회선진화법을 악용해 정부여당의 발목을 잡는 등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일관했다. 그러니 국민의 눈에 안보불안, 경제불안, 신뢰불안 정당으로밖에 더 보이겠는가. 제3당으로 약진한 국민의당에 ‘야권재편 당하지’ 않으려면 이제는 환골탈태해야 한다.
국정 정상화 위해 탕평인사-개각하라
총선이 끝나고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잠룡들이 꿈틀거리겠지만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이 녹록지 않다. 박근혜 정부 앞에는 경제를 살리고 금융 노동 공공 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을 완수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실업률 상승과 수출 급감, 가계부채 증가 등으로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진 것이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 철회로 나타났다는 해석도 있다. 박 대통령에게 총선 이후의 과제는 여당의 대선 준비가 아니라 국정의 정상화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은 콘크리트 지지층도 무너질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임기 후반기에 국정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당내 친정체제를 구축하려 한 것은 국민이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이제는 ‘선거의 여왕’이란 타이틀은 내려놓고 국정에 전념해 경제위기, 안보위기를 헤쳐 나가라는 국민의 지엄한 명령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향후 정국은 집권 새누리당과 친여 무소속,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이 혼존(混存)하는 다여다야(多與多野) 구조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까지의 일방통행식 통치에서 탈피해야 한다. 야당까지 아우르는 탕평인사와 함께 전면 개각으로 국정을 쇄신해야 한다. 국민 앞에 자성하고 새롭게 바뀌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국민이 이번 총선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단호하게 던진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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