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어제 4·13총선에 대해 정연국 대변인 명의로 “20대 국회가 민생을 챙기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국회가 되기를 바란다. 국민들의 이러한 요구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는 달랑 두 줄짜리 논평을 내놓았다.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흔한 표현조차 없다. 마치 총선 결과와 청와대는 아무 상관이 없고, 그저 남의 일을 논평하는 것 같다. 오히려 문면을 살펴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해온 ‘국회 심판론’이 먹힌 것처럼 해석될 소지도 있다.
청와대 참모진이 총사퇴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런 논평을 내다니 민심을 잘 모르는 것인가. 어제 자 조간신문의 총선 사설은 보수·진보매체 할 것 없이 ‘박근혜 대통령의 오만에 대한 심판이 20대 총선의 민의’라고 썼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은 신문도 안 보는가. 박 대통령이 그런 민의를 읽고도 침묵하는 것이라면 남은 임기도 ‘마이웨이’를 하겠다는 뜻으로 읽혀 섬뜩하다. ‘선거의 여왕’ 박 대통령이 충격적인 참패에 망연자실하자 참모진이 제대로 보고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고사까지 떠오르니 답답하다.
박 대통령은 절반 의석을 훨씬 넘긴 두 야당의 협조 없이는 남은 22개월 임기 동안 국정을 제대로 꾸려갈 수조차 없다. 아쉬운 건 박 대통령이니 국정 운영 스타일을 바꿔 먼저 야당에 다가가는 게 긴요하다.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과 현기환 대통령정무수석이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청와대부터 전면적인 인적 쇄신을 검토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앞으로 어떻게 국정을 운영해 나갈지 국민에게 직접 밝히는 게 옳다. 그것이 정권을 맡기고 중간평가에서 엄중하게 경고한 국민에 대한 예의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어제 총선 참패에 책임을 지고 집단 사퇴했다. 집권 여당이 대통령 재임 중 총선에서 원내 2당으로 밀려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새누리당은 6월로 예상되는 전당대회까지 원유철 원내대표가 위원장이 되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키로 했다. 당은 비대위와 청와대의 관계부터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은 집권당을 하수인 다루듯 했지만 당과 수평적인 관계를 하루속히 복원해야 한다. 당은 또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탈당 무소속의 복당도 허용키로 했다. 박 대통령의 눈에 난 인사들의 복당이 당청 정상화의 시발점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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