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원유철 與비대위원장, 청와대에 할 말을 할 수 있겠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6일 00시 00분


새누리당 원유철 비상대책위원장이 어제 “총선 민의를 참회하는 마음으로 무겁고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사과했다. 그는 “새로 구성될 지도부는 계파 갈등을 넘어서 친박(친박근혜) 비박(비박근혜)도 아닌 오직 친(親)민생의 새누리당이어야 한다”며 “비대위 인선 과정에서도 이 점을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죽고살기 식 계파싸움에 매몰됐던 새누리당이 총선 참패를 당하고서야 사과하고 민생을 중심에 놓겠다니 다행스럽다. 그러나 국민이 정작 듣고 싶은 말은 빠졌다.

새누리당은 공천 과정에서 마치 청와대 하수인처럼 박근혜 대통령의 눈에 난 비박계에 칼을 휘둘렀다. ‘당 중심의 당청관계’를 주장했던 유승민 원내대표가 ‘배신의 정치’로 지목받아 쫓겨난 뒤 청와대 ‘오더’에 충실했던 친박계의 오만을 심판한 것이 이번 총선의 민의다. 그렇다면 원 위원장은 당과 청와대의 수평적 관계 정립부터 쇄신책으로 내놓았어야 한다.

원 위원장의 정치적 궤적을 보면 그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친박계로 분류되지 않았던 그는 유 의원 후임으로 작년 7월 원내대표가 되자 “당과 청와대는 찰떡궁합”이라고 주장했고, “나를 신(新)박이라 불러 달라”고 했다. 이번 총선에서도 경기권 선대위원장으로 수도권에서 ‘탄핵풍’이 불었던 17대 총선보다 더한 참패를 당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비대위원장에 앉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총선 결과에 개의치 않겠다’는 식의 ‘친박 내려 꽂기’ 공천으로 의석은 122석으로 졸아들었지만 친박계는 70여 명으로 더 늘어났다. 친박 일각에선 총선 참패의 책임을 김무성 대표의 ‘옥새 파동’으로 돌리려는 조짐마저 보인다. 그렇게 되면 비대위는 새 지도부 선출까지 중립적 역할은 고사하고 친박 지도부를 맞기 위한 양탄자 깔기가 고작일 것이다.

떠나간 민심을 붙잡으려면 원 위원장부터 박 대통령의 사과와 청와대 전면 쇄신 및 개각을 촉구하고 나서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5·31지방선거 참패 후 “한두 번 선거에서 패배했다고 해서 역사의 흐름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라며 독선을 버리지 않았다가 불행한 임기말을 맞았다. 총선 과정을 ‘사후 부검’하는 총선 백서를 만들어 청와대와 함께 패배 원인과 개혁 방향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원 위원장은 비대위가 구성되는 대로 대통령과 여야 대표까지 포함한 연석회의를 성사시켜 박 대통령이 민심과 소통하도록 해야 한다.
#새누리당#원유철#박근혜#새누리당 공천#신박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