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디 국장’이었다. 경남 출신인 나는 3년 전 편집국장을 할 때 후배들에게 “단디 하라”고 입버릇처럼 주문하곤 했다. 최근 남양주의 금선사 주지 홍산 스님에게서 ‘단디’의 유래를 흥미롭게 들었다. 끊을 단을 두 번 겹친 ‘단단(斷斷)히’의 경상도 사투리라는 설명이다.
“상이 나면 상주가 인편으로 부고(訃告)를 전할 일꾼을 부른다. 노잣돈 몇 푼 쥐여준 뒤 ‘단디 갔다 오라’ 한다. 읍내를 지나다 보면 서커스도, 색주가도 있어 유혹에 넘어갈 수 있다. 그래서 유혹을 끊고 먼 곳의 친지들에게 한눈팔지 말고 다녀오라는 당부다. 욕망이나 유혹을 끊고 진리를 깨치기 위해 일심(一心)정진하라는 뜻이다.”
국어연구원의 국어대사전은 ‘단단히’의 뜻을 ‘연하거나 무르지 않고 야무지고 튼튼하게’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불가에서는 ‘단단(斷斷)히’로 풀어 홍산 스님의 해설처럼 욕망을 경계하는 뜻으로 쓰였을 수도 있다. ‘대단하다’ ‘제발(諸發)해라’ ‘제법(諸法)이다’ 같은 말도 불교에서 유래했다. ‘대단하다’는 목숨까지 거는 각오로 아스라한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는 큰 결단을 뜻한다. ‘제발’ ‘제법’도 발원(發願)이나 법도를 의미한다.
민심이 천둥 벼락같이 집권여당을 강타한 4·13총선의 후폭풍이 거세다. 새누리당은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 전원이 사퇴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하고 유승민 주호영을 비롯한 탈당 무소속 당선자 7명의 복당도 허용했다. 여당의 발 빠른 대응에 비해 청와대는 답답할 정도로 굼뜨다.
박근혜 대통령의 심기만 살피느라 청와대 참모들이 기민한 대응을 놓치고 있다. 집권자의 비위를 맞추느라 공천 과정에서 온갖 패악을 저질러 민심을 들끓게 해놓고 지금도 정신 못 차리고 이 눈치 저 눈치 보다 수습도 실기할 것 같다. 반성은커녕 일부 강성 참모들은 정국 주도권을 놓지 않기 위해 ‘사정(司正) 드라이브’ 운운의 망발까지 한다는 말도 들린다.
4차 핵실험 후 김정은의 대남 도발 위협은 심상찮다. 5월 노동당 대회를 전후해 변란이 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경제는 빈사상태에 이른 지 오래다. 민초들의 삶은 고단하고 경제는 회생할 기미조차 없다. 총선 참패로 레임덕에 빠진 대통령과 집권여당 주도의 개혁이나 구조조정은 물거품이 됐다.
박 대통령부터 ‘제발’ 나라를 위해 ‘대단한’ 각오로 ‘단단히 하라’고 당부 드린다. 2007년 대선 경선에서 패배한 것을 빼고 크고 작은 선거에서 져본 일이 없다. 그래서 박 대통령을 ‘선거의 여왕’이라 한다. 대통령이 총선 참패에서 받았을 충격의 강도를 잘 안다. 그래도 평상심을 되찾아 흔들리는 국정을 바로 세우시라.
선거라는 ‘무혈(無血) 혁명’을 통해 국정의 양대 축인 ‘입법(立法) 권력’을 야당에 내줬다. 이제 일방 독주로 국정을 끌고 갈 순 없다. 사정 운운하는 덜 떨어진 과잉충성 참모들은 내쳐야 한다. ‘칼의 정치’가 아니라 이제 야당과의 ‘협치(協治)’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김종인과 안철수도 우리 아들딸과 손자손녀들이 번영된 통일 대한민국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국정에 협조하라. 이제 소수 야당이 아니라 절반 의석을 훨씬 넘는 거야(巨野)가 됐다. 레임덕으로 절름거리는 대통령의 발목만 잡다가는 내년 대선에서 철퇴를 맞게 될 것이다. 힘 있는 자가 오만불손(傲慢不遜)하면 배를 뒤집는 총선 민심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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