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이후! 이제는 경제다]“정부, 말로만 구조조정”→ 취약업종 일부 감산 권고가 전부… “민간주도로 구조조정” 발 빼기도
“국회는 번번이 발목 잡고”→ 원샷법-구조조정법 처리엔 미적… 지역구 부실기업에 돈 지원 압박
“기업도 위기상황 눈 감아”→ 한진그룹-현대그룹 등 적기 놓쳐… 미래 먹거리 개발 선제 조치 필요
“제대로 될까요? 저러다 또 은행들이 채권 회수하고 회생절차 들어가겠다고 하면 정부에서 말릴 텐데…. 솔직히 정부가 구조개혁 의지를 갖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시중은행 고위 관계자)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구조조정을 직접 챙기겠다”고 나서고 부처 간 구조조정 협의체가 재가동될 태세지만 금융권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그동안 말만 요란했지 부실기업 ‘정리’보다는 ‘지원’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조선업종도 STX조선에만 2013년 이후 당초 계획의 2배가량인 4조5000억 원의 자금이 투입됐다. 성동조선해양은 4200억 원이 긴급 수혈된 뒤 삼성중공업의 위탁경영을 받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에는 혈세 4조2000억 원의 지원이 결정됐다. ‘대마불사(大馬不死)’처럼 상태가 심각한 기업들이 정부 주도하에 채권단의 지원을 얻어낸 뒤 수명 연장에 성공한 셈이다.
이처럼 산업구조 개편이 지지부진해지는 동안 국내 경제성장률은 2%대에 주저앉으며 경제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소심한 정부-구조개혁을 외면하는 국회-안이한 기업’이라는 ‘트라이앵글’에 갇혀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구조개혁에 몸 사리는 정부
한계기업이 급증하며 구조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정부는 지난해 10월부터 부처 간 구조조정협의체를 통해 산업 개편에 대대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두 차례의 ‘산업별 구조조정협의체’ 회의 결과는 기대를 크게 밑돌았다. 조선, 해운, 석유화학, 철강, 건설을 5대 취약업종으로 꼽고 합금철과 석유화학의 테레프탈산(TPA) 분야에서의 감산(減産)을 권고한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당초 업황을 분석해 구조조정의 가이드라인으로 삼겠다던 업종별 리포트는 “현장에 오해를 부를 수 있다”며 발표하지 않았다. 최근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역시 구조조정 첫 타깃으로 철강업을 지목하면서도 “정부가 아닌 민간 주도로 할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부처 간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큰 그림’을 그리는 일에도 취약했다. 실제로 지난해 현대상선을 두고 ‘살려야 한다’는 해양수산부와 ‘더이상은 방법이 없다’는 다른 부처들의 의견이 대립하면서 구조조정 시기만 늦추는 결과를 낳았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정부가 단기적으로 일자리가 줄고, 국내총생산이 줄어드는 등 경제 성적표가 나빠질 것을 우려하는 모습”이라며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 구조개혁 외면하는 국회와 기업
19대 국회는 정쟁에 몰두하며 산업 개편을 돕기는커녕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기업활력 제고를위한특별법’(일명 원샷법)은 발의된 지 210일 만에 올 2월 겨우 통과됐다. 기업의 워크아웃 작업을 돕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 개정안 역시 지난해 말 일몰되면서 공백 상태를 빚다가 올해 2월 임시국회에서 가까스로 처리됐다.
부산과 경남권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들은 수시로 은행장들을 호출하며 자신의 지역구에 거점을 둔 기업을 살려달라고 압박해 일을 꼬이게 만들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성동조선해양에서 우리은행이 돈을 빼겠다고 하자 정치권이 이광구 우리은행장에게 수차례 지원 요청을 전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4·13총선을 앞두고는 너나없이 기업을 감싸 안았다. 총선 이틀 전인 11일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울산 현대중공업 근로자들의 표를 겨냥해 “쉬운 해고가 절대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게 대표적이다.
기업도 구조개혁을 외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진그룹, 현대그룹 등 오너 기업들은 상황 분석을 안이하게 하다가 구조조정의 적기를 놓쳤다. 반면 독일 지멘스가 다각화했던 사업을 산업솔루션, 에너지, 헬스케어, 도시인프라 등으로 집중시키고 제너럴일렉트릭(GE)이 가전사업부문을 정리한 뒤 소프트웨어 산업에 나서는 등 글로벌 기업들은 끊임없는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구조개혁이 늦어지면 단순히 먹거리가 줄어드는 것을 넘어 위기가 가중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우리나라 30대 그룹 계열사 1100곳 중 400여 곳이 적자”라며 “이것을 그대로 두면 은행으로 부실이 전이돼 금융위기가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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