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종인 대표 추대? 더민주당이 문재인의 私黨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1일 00시 00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석 달 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영입하면서 비례대표 2번 보장과 함께 “대선까지 당을 이끌어 달라”고 말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 대표는 어제 한 언론 인터뷰에서 “실제로 나하고 그렇게 얘기했다”고 확인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김 대표의 ‘차기 대표 합의 추대론’이 공연히 터져 나온 게 아닌 것이다. 그러나 더민주당 사람들조차 그런 묵계를 알지 못했다. 문 전 대표가 당권을 줬다면 김 대표는 무엇을 주기로 했는지, 그것이 ‘대선후보’인지 밝혀야 한다.

문 전 대표는 비례대표 공천 파동이 일어난 3월 22일 김 대표의 사퇴를 막기 위해 자택으로 찾아가 “다음 대선까지 역할을 계속해줘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도 문 전 대표가 김 대표에게 차기 당권을 보장하는 약속임이 명확해졌다. 아무 당직도 없는 전(前) 대표가 무슨 권리로 차기 당권을 약속할 수 있는가. 문 전 대표 스스로 더민주당의 상왕(上王)이거나 더민주당을 사당(私黨)으로 여기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 대표는 4·13총선에서 비례대표에 당선돼 비례대표로만 5선 고지에 올랐다. 1988년 13대 총선 때 민주정의당 후보로 서울 관악을에 출마했으나 당시 평화민주당 이해찬 후보에게 패했다. 믿기지 않지만 이해찬 의원을 공천에서 탈락시킨 김 대표의 ‘정무적 판단’도 그때의 패배와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 있다. 김 대표가 비례대표로만 정치를 해온 데다 한번 나섰던 선거에서마저 패한 터라 ‘선거 공포증’ 때문에 대표 경선을 기피한다는 추측도 나온다. 그러나 지금은 권력자에 의해 당 대표가 낙점되는 5공(共)시대가 아니다.

김 대표는 어제 당선자대회에서 “만에 하나라도 우리가 종전과 같은 모습을 또 보인다면 유권자들이 굉장히 냉혹하게 돌아설 수 있다”고 말했다. 총선 승리에 대한 자신의 공을 알아달라는 당부이자 내년 대선도 잘 치르고 싶으면 자신을 대표로 추대해야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행여 김 대표가 더민주당의 승리를 이끈 데 대한 보상 심리에서 합의 추대를 바란다면 그 역시 터무니없는 일이다. 더민주당의 승리는 새누리당의 오만을 유권자들이 심판한 데 따른 반사이익이 더 컸다.

친노(친노무현) 일각에서도 김 대표 추대론이 나오지만 공천에서 탈락한 정청래 의원은 “비리 혐의로 돈 먹고 감옥 간 사람은 과거사라도 당 대표 자격에서 원천 배제해야 한다”는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김 대표는 19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번 총선에서 당선돼 대표직에 뜻을 둔 다선 의원들도 합의 추대는 천부당만부당하다고 말한다. 정당법은 정당의 운영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정당의 대표는 경선이라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 선출돼야 한다.
#더불어민주당#문재인#김종인#대선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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