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의 휴먼정치]총선 참패는 靑 ‘좁쌀 인사’부터 시작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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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논설위원
박제균 논설위원
이명박 대통령 임기가 반년밖에 남지 않은 2012년 8월. 청와대는 주요국 대사 등 17명 해외공관장 인사를 했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서 벌어졌다. 새 청와대가 공관장 인사를 하려고 보니, 임기를 채운 사람이 별로 없었다. 고민하던 청와대는 부임 1년도 안 된 몇몇을 불러들여 새 사람을 앉혔다. 당연히 주재국에선 ‘외교적 실례’라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퇴임을 앞두고 대거 ‘이명박 표 공관장’의 대못을 박으려 했던 전 청와대에 1차 책임이 있다. 그렇다고 외교적 실례를 무릅쓰고 ‘박근혜 표 공관장’을 심었던 현 청와대도 잘한 것은 없다.

일선부처 국장까지 간섭

‘정치 9단’이었던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때론 인사 잘못이 있어도 시중 여론을 시의적절하게 반영해 바로잡곤 했다. 그러나 노무현의 ‘오기 인사’, 이명박의 ‘고소영 인사’, 박근혜의 ‘수첩 인사’까지, 인사에 능한 대통령을 본 지 오래다. 국정실패는 인사실패부터 시작된다.

그래도 전 정권까지는 해당 부처에 어느 정도 재량권을 줬다. 박근혜 청와대는 일개 부처 국장 인사까지 일일이 손대고 있다. 일선 부처가 청와대에 인사안을 올릴 때는 대체로 3배수로 제출한다. ‘1순위: A, 2순위: B, 3순위: C’ 식이다. 전 정권까지는 대개 1순위의 A가 큰 하자가 없으면 낙점됐다. 그런데 현 청와대는 A를 제치고 B, 때론 C를 낙점하는 일이 많아졌다.

‘정책이 있으면 대책이 있다’고 했다. 꾀가 난 공무원들은 부처에서 미는 사람을 B, C 자리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를 눈치챈 청와대는 A, B, C를 모두 비토하고 ‘새판을 짜오라’고까지 한다. 그러다가 ‘듣도 보도 못한 인물’이 자리를 꿰차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문제는 이런 과정이 정상적인 의사결정 통로를 통해 이루어지느냐다. 청와대에는 대통령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인사위원회가 있다. 국정(정책)기획수석과 정무수석은 상시 참석 위원이며 인사 대상자 해당 분야 수석이 돌아가면서 배석한다. 인사위원회까지 통과된 인사안이 막판 ‘어디선가’ 뒤집히는 일이 적지 않다. 이러니 공무원들의 원성이 자자하지 않겠는가. 세종시에서 이해찬 의원이 연달아 당선된 건 놀랄 일이 아니다.

‘제왕적 대통령제’라지만 입법 권력이 세질수록 청와대는 고유 권한인 인사권에 집착한다. 세계 어떤 선진국가에서 주식이 한 주도 없는 정부가 거대 기업·기관의 사장과 이사, 감사 등 재계 인사까지 좌지우지하는가. 시장경제의 근간인 주식회사 제도를 부정하는 것이다.

불통인사로 오만 돋보여

대통령의 인사는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인사와는 달라야 한다. CEO는 일 잘하고, 예쁘기까지 한 사람을 쓰면 그만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인사는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다.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과 ‘문창극 국무총리 지명’에서 보듯, 국민이 ‘어, 왜 이러지?’라고 느끼면 불통(不通)이 시작된다. 불통이 쌓이면 오만과 독선이 돋보이고, 결국 민심이 돌아서 심판을 내린다.

사족: 인사 얘기를 쓰는 것은 무척 조심스럽다. 예기치 못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거나 보복 인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 최근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최대한 관련자들이 지목되지 않도록 두루뭉술하게 쓴 점, 양해 부탁드린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이명박#박근혜#불통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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