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승 의원은 국민 안 섬겨… 경쟁 살아났으니 달라질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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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의 타파’ 4인 좌담]지역주의 완전히 없애려면

《 4·13총선 표심은 절묘했다. 여권의 오만을 심판했고, 야권에 교만해지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도 각 지역에서 ‘기적의 주인공’들을 배출했다.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한국 정치에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뿌린 셈이다. 불모지인 호남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이정현, 정운천 당선자와 영남에 더불어민주당의 깃발을 꽂은 김부겸, 김영춘 당선자가 그들이다. 이들이 그동안 해당 지역에서 낙선한 것을 합하면 모두 8번이다. 부딪치고 깨지기를 반복하며 이룬 성취 앞에서 이들은 더 겸손했다. 국민의 선택이 얼마나 위대한지, 또 국민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지역주의의 벽을 허문 4인이 당을 뛰어넘어 한자리에 모일 수 있게 됐다는 것 자체가 2016년 한국 정치의 ‘주목할 만한 장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네 사람 동맹 맺으면 어떨까” 화기애애 지역주의를 뚫고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4인방은 한결같이 “국민이 해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21일 동아일보사 19층 회의실에서 특별좌담을 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새누리당 이정현, 더민주당 김부겸, 새누리당 정운천 당선자(왼쪽부터).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네 사람 동맹 맺으면 어떨까” 화기애애 지역주의를 뚫고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4인방은 한결같이 “국민이 해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21일 동아일보사 19층 회의실에서 특별좌담을 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새누리당 이정현, 더민주당 김부겸, 새누리당 정운천 당선자(왼쪽부터).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저를 찍는다는 건 지역에서 배신자가 되는 거다. 어떤 사람은 1번(새누리당)을 찍으려고 하는데 투표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쳐다보고 있더라고 하더라.”(이정현 당선자)

“아이고 말 마라. 자기는 분명 2번(더불어민주당)을 찍는다고 찍었는데 찍고 나서 보니 1번이었다는 분도 있더라.”(김부겸 당선자)

수십 년간 한국 정치를 짓눌러온 지역주의는 그만큼 공고했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또 4년 뒤를 기약해야 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번엔 달랐다. 국민은 이들을 선택했고 ‘정치의 변화’를 요구했다. 지역주의 타파의 개척자들로 기록될 4인의 특별 좌담회가 21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동아일보사에서 열렸다. 진행은 정용관 정치부장이 맡았다.

▽지역주의의 벽을 뚫은 소감부터 듣고 싶다.

김부겸(이하 겸)=지역감정은 정치인들이 선동하고 악용해 온 것이다. 이정현 당선자가 2014년 7월 전남 순천-곡성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것을 보면서 뭔가 변화가 시작됐다고 예감했다. 하지만 마지막 결과를 보기 전까지 확신하지 못했다. 정말 시민들이 (지역주의 타파를) 이뤄낸 것이다.

이정현(이하 이)=그렇다. 국민이 해냈다. 저는 지금도 눈물이 난다. 한두 사람이 아니라 6만6981명(이 당선자는 4·13총선에서 자신을 찍은 유권자 수를 정확하게 기억했다)이 나를 선택해줬다. 새누리당이 전국적으로 심판받는 분위기 속에서, 또 한편으론 전직 대선주자(더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의미)가 무릎을 꿇고 애원했음에도 이 모든 걸 다 뿌리치고 새누리당 후보에게 표를 줬다. 정치인이 아닌 국민의 손으로 지역분할 구도를 깬 것이다.

김영춘(이하 춘)=한마디로 ‘주권 되찾기’다. 새누리당 지지자 가운데 저를 찍어준 분이 많다. 이분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이제 주인 노릇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일종의 ‘독립선언’이다. 제가 당선됐다고 야당을 지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야당이 잘하면 야당을, 그게 아니면 가차 없이 다시 새누리당을 지지할 것이다.

정운천(이하 정)=저는 김부겸, 이정현 당선자 덕을 톡톡히 봤다. 제갈공명이 적벽대전에서 동남풍으로 조조의 대군을 물리치지 않았나. 저도 동쪽에서 ‘김부겸 바람’이, 남쪽에서 ‘이정현 바람’이 불었다. ‘대구도 변하고, 전남도 변하는데 전주만 안 변하면 망한다’며 지지를 호소한 게 주효했다.(웃음)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

정=많은 시민들이 ‘사람은 쓸 만한데 왜 새누리당 옷을 입고 있느냐’고 하더라. 하지만 지역주의 벽을 깨자고 6년을 버텼는데, 어떻게 다른 옷으로 갈아입느냐. 그런데 막상 당선되고 나니 저를 찍지 않은 사람들도 좋아하더라. 자신들도 (지역주의의 굴레에서) 해방됐다는 것이다.

이=23년 동안 5번 도전해 3번 떨어지고 2번 당선됐다. (그러자 김부겸 당선자가 ‘승률이 나쁘지 않다’고 농담을 던졌다. 이 당선자는 ‘23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이 얼마나 긴지 아느냐’며 웃었다.) 세 번 낙선했을 땐 저도 (당적을 버리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18대 국회에서) 비례대표 의원을 하면서 호남 전체가 제 지역구라고 생각하며 뛰니까 그때부터는 ‘새누리당을 나와라’가 아니라 ‘거기서 제대로 커라’로 바뀌더라.

겸=저도 ‘그(더민주당) 옷만 벗으면…’이라는 얘기를 숱하게 들었다. 하지만 존재 이유를 부정할 순 없었다. 특히 저는 홍의락 당선자(더민주당에서 공천 배제되자 탈당해 무소속으로 대구 북을에서 당선)가 컷오프(경선 배제)됐을 때 진짜 괴로웠다. 사람들이 ‘봐라. (당에서) 너희들을 버리지 않느냐’고 하더라.

▽지역주의 타파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지역 정치에서 경쟁 구도가 회복된 것이다. 수십 년간 공천만 받으면 부전승 경기나 다름없는 선거가 이어지면서 지역에서 경쟁이라는 게 완전히 사라졌다. 경쟁이 없으면 국회의원이 지역민에게 고개를 숙일 필요도, 민원 현장을 찾아갈 이유도 없다. 제가 나타나 점퍼 입고, 자전거 타고, 이장 댁에서 자고, 광장토크를 하니 다른 후보들도 전부 자전거 타고, 스쿠터 타고 민생 경쟁을 하더라.

이 당선자는 ‘PK(부산울산경남) 정치’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에서 당선자 수는 새누리당이 압도적으로 많더라도 득표율 차이는 한 자릿수인 지역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치열한 경쟁이 이뤄지니 정치인들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국회의장과 여야 전 대표 등이 모두 부산 출신이다. PK 정치인들은 강하고 질기고 열정적이다. 하지만 (경쟁이 없는) TK(대구경북)와 호남 정치인들은 룰루랄라(여유)다.”

춘=총선 1년 전 더민주당 부산시당 산하에 ‘오륙도연구소’를 만들어 매달 지역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처음에는 콧방귀를 뀌던 새누리당도 몇 달 뒤에 비슷한 연구소를 열더라. 야당이 세게 덤벼들고 선도적으로 정책 경쟁에 나서니 여당이 따라온 것이다. 정치 경쟁이 곧 지역 발전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겸=지금까지 적당히 구도만 잘 짜면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니 생산성도 없고 결과도 없이 자기들끼리 골목대장 노릇만 한 것 아니냐. 당선인사를 다니면 한결같은 반응이 ‘그래, 이제 한번 해보자’는 것이다.

▽지역주의를 완전히 깨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나.

정=민심에 의해 선거혁명이 있었다면 이제 정치적 제도로 (지역주의 타파를) 유도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나 석패율제를 도입한다더니 하나도 안 했다. 지역주의 타파에 가속도가 붙으려면 정치적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나는 (선거제도를 논의하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선거 1년 전, 6개월 전이 아닌 20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구성했으면 좋겠다.

춘=여기 모인 우리 네 사람이 ‘지방동맹’ 같은 걸 맺으면 어떻겠나. 현재 양극화 현상이 국가 성장을 좀먹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 현상도 심각하다. 지방이 망하면 국가의 성장잠재력도 떨어진다. 지방이 같이 잘살 수 있도록 우리가 지방동맹, 정치동맹을 굳건히 하면 지역주의 문제도 해소될 것이다.

이들은 4·13총선의 최대 승자다. 인터뷰 내내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검게 탄 얼굴과 쉰 목소리에서는 그동안의 절망과 고민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김부겸 당선자는 연신 콜록거리는 이 당선자에게 생수를 권하기도 했다. 서로의 고통을 아는 데서부터 ‘타협과 협력의 정치’가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송찬욱 기자
#지역주의#총선#당선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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