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시대 서독도 학교 통일교육 강조
진보-보수 모두가 인정할 원칙 재정립 무너진 통일 교육 바로 세우자
전혀 화려하지 않지만, 밝게 꾸며놓은 교사(校舍)가 보인다. 경남 산청에 있는 지리산고등학교. 교정으로 들어서자 아이들이 하나둘 교실에서 나오더니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건넨다. 그러고 보니 공수배례(拱手拜禮)를 한다. ‘저런 인사를 언제 받아본 적이 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요즘 아이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예법이다.
이 학교는 저소득층 아이들 중 선발해서 전액 무료로 가르친다. 각 학년 20명, 전교생 60명인 작은 학교다. 대부분 가정환경이 불우한 아이들이다. 그러나 낯빛은 그렇게 밝을 수가 없고, 강의 내내 진지했다. 제법 묵직한 질문도 던진다. 장래 통일 문제를 공부하고 싶다는 3학년 준희는 사드 배치 움직임으로 대중 관계에 어려움이 없는지, 통일 관련 한중 간 협력 방안을 물었다.
아이들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 학교가 지향하는 통일 문제 특성화의 목표가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는 것 같았다.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표방하는 것도 통일 준비가 무엇인지 잘 이해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 공동체 최대 과제인 통일 준비의 핵심이자 기본은 교육이다. 그것도 초중고교에서의 학교 통일 교육이다. 어릴 적 학교에서 배운 교육은 어른이 돼서도 웬만해서는 잊히지 않는다. 망가진 우리 학교에서 통일 교육을 세우는 방안을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
독일과는 사정이 다르지만, 통일 교육에 관해서는 배울 점이 있다. 서독은 1978년에 동독을 국가로, 그리고 서로의 공존을 잠정적으로 인정하면서도, 통일을 목표로 설정한 ‘학교 수업에서 독일 문제(Die deutsche Frage im Unterricht)’라는 결정을 내렸다. 국내에서는 이것보다, “특정 이데올로기나 가치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보이텔스바허 협약(Beutelsbacher Konsens)이 자주 소개되는데 위의 결정과는 다르다.
이 결정은 “학교는 통일 문제에 대해 특별한 기여를 해야” 하고, “통일 문제는 모든 학교의 수업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학교 수업을 위한 참고 사항이 매우 구체적이다. 몇 가지만 보자. △독일 문제는 동시에 유럽 문제이다. △독일 문제 진척은 평화 지향적인 정책을 통해 달성 가능하다. △민족적 통일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정당하다. △국경 양편에 살고 있는 독일인들은 공통의 역사, 언어, 문화를 통해 결속되어 있다. △동독에 있는 독일인들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우리의 요구는 당연한 권리이자, 인도주의적 의무다. △동독주민들도 통일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다. △동독의 독일인들도 분단 이후 동독의 재건에 긍지를 갖고 있다. △통일은 우리의 확고한 목표다. △독일은 서독이 전부가 아니다.
마지막 항목이 특히 중요하다. 국제법적으로는 동독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교육에 있어서는 동독이 독일의 절반임을 강조한 것이다. 대부분은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배워야 할 것은 정권 교체에 상관없이 통일 교육이 담아야 할 원칙을 정립해서 통일 교육을 내실화하는 일이다. 대북정책과 통일 문제를 두고 갈등이 조성돼 있는 우리 정치권과 교육 현장이 과연 합의를 이룰 수 있는가 하는 회의가 있지만, 부닥쳐 봐야 한다. 20대 국회가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지만, 이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원칙에 합의할 수 있다면, 교사들에 대한 재교육이 뒤따라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교육은 결국 교사에 의해 전달된다. 특히 통일 교육은 지식과 이성만으로는 잘 전달되지 않는다. 통일 문제에 대한 열정을 간직한 교사와 교과 내용만을 전달하는 교사, 아이들은 금세 알아본다. 가슴이 없는, 머리로만 전달하는 통일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고리타분한 장광설로 빠진다.
만일 이런 조치들이 당장 안 된다면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통일 관련 문제를 10개 정도 출제하는 것은 어떨까. 대학 입시에 올인하는 세태에서 가장 효과적이고도 현실적인 통일 교육 제고 방안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통일을 가르치는 사설 학원도 생겨나지 않을까. 그러나 이것은 올바른 방향일 수 없다. 시험 문제로 아이들을 유인하는 것만큼 비교육적인 것은 없다. 공동체의 궁극적인 안녕을 위한 일을 어찌 시험에 들게 할 것인가. 어찌 됐든 통일 교육을 하지 않으면서 통일을 이루겠다는 것은 공염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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