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존망의 안보 위기에… 정파투쟁의 국론 분열로
치명적 안보 손실 초래… 고종 때 조선책략
선조 때 동인 서인 다툼… 역사적 뿌리 깊어
핵미사일 방어 위한 사드… 여야 단합으로 도입해야
북한의 중대한 도발이 있을 때마다 국내에서 심각한 국론분열이 벌어지면서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심각한 안보 손실을 초래했다. 북한이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이후 23년 동안 핵실험을 4차례 하며 핵개발을 지속한 것은 한국과 미국의 정권 교체기마다 대북(對北) 정책이 바뀌어 북에 일관된 메시지를 주지 못한 점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중국과 북한은 북핵을 둘러싸고 한국의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로 편이 갈린 국론분열의 틈을 파고들었다.
국가안보의 위기에 대처 방안을 놓고 국론분열이 일어나는 고질(痼疾)은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다. 6자회담 한국 측 수석대표를 지낸 위성락 씨(전 주러시아 대사)는 조선 말기의 조선책략 소동을 예로 들었다. 국가의 존망이 풍전등화(風前燈火) 같던 조선 말기에 개화파인 김홍집이 일본에서 중국 외교관이 쓴 ‘조선책략’을 구해다 고종에게 바쳤다. 그런데 국제적 식견도 없는 유생들이 ‘말 같지도 않은 책으로 조정을 어지럽히느냐’며 들고일어나 만인소 사건으로 비화했다. 임진왜란 직전에 왕명으로 일본을 탐문하고 돌아온 동인과 서인은 전쟁 발발 가능성을 놓고 당파 싸움의 연장선상에서 논쟁했다.
2010년 발생한 천안함 폭침 원인을 놓고 야당이 북의 잠수함 공격을 인정하기까지 무려 5년이 걸렸다. 문재인은 2012년 대선후보 때도 해군 2함대사령부에 전시돼 있는 천안함을 찾아 ‘폭침’ 대신 ‘침몰’이라고 표현했다가 2015년 천안함 5주년이 가까운 시점에서야 “북 잠수함이 천안함을 타격했다”고 처음으로 인정했다. 전문가라고 자칭하는 좌파의 사이비들은 기뢰사고설 잠수함충돌설 선내폭발설 같은 공상소설을 썼다. 한국의 야당과 좌파세력이 천안함 폭침에 의문을 제기하는 판에 북한을 궁지로 몰아넣기 싫은 중국으로선 백만 우군을 얻은 셈이다.
“북핵은 방어용”이라거나 “북핵도 통일되면 우리 것” 같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진보세력의 북핵 편들기 발언을 새삼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들어서면서 더불어민주당의 안보관이 달라지는 듯한 것은 다행이지만 친노 핵심 주류의 생각까지 변했는지는 의문이다. 국민의당도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말처럼 안철수 대표의 안보관은 튼튼한 것 같지만 대부분 더민주당에서 허겁지겁 건너간 의원들의 과거 행태를 놓고 보면 미덥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에 대해서도 야권에서 엇갈린 목소리가 나온다. 안 대표는 올 2월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 발언에서 “찬성 반대로 편을 가르는 이분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실효성, 비용, 주변국과 외교적 마찰 등을 공론의 장에서 논의해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드를 ‘해야 한다’는 건지 ‘해서는 안 된다’는 건지 분명하지 않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방어는 국가의 존망이 달린 사안이다. 패트리엇(PAC)은 미사일 하나에 두 발을 쏜다. 요격률은 80%다. 저고도 미사일 방어망인 PAC밖에 없는 한국은 PAC가 실패하면 미사일을 그대로 얻어맞을 수밖에 없다. 사드는 요격고도가 40∼150km다. 사드가 탐지-추적-식별-요격에 실패한 미사일은 배척고도(10∼12km·지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높이)에 도달하기 전에 PAC가 잡게 된다. 사드는 북의 핵과 미사일에 맞서 반드시 도입해야 할 방어 시스템이다.
중국은 한국에 사드를 설치할 경우 미국이 중국의 미사일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기 때문에 미중 간 미사일의 전략적 균형이 깨진다고 주장하지만 기술적 토론에 들어가면 중국의 반대 논리가 약하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시진핑 주석에게 실무자들이 사드를 어마어마하게 보고해 주워 담지를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에 배치된 사드 레이더는 전방 배치 모드로 탐지거리가 1000km 이상으로 길고 넓지만, 한국에 도입할 사드 레이더는 종말단계 배치 모드로 탐지거리가 600∼800km로 제한돼 신의주와 동북지방 일부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드에 대해서도 여야와 보수 진보가 다른 목소리를 내면 중국에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에서 김종필 박태준 씨처럼 안보의식이 투철한 사람들과 연대를 맺어 덕을 톡톡히 봤다. 총선에서 승리한 거야(巨野)가 우쭐한 나머지 안보 불안감을 해소하는 노력을 않다가는 다가오는 큰 선거에서 승리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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