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실예법에 따르면 여왕이 말을 걸기 전까지 입을 열어선 안 된다. 신체 접촉도 금지다. 2009년 버킹엄궁 리셉션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여사가 미국식 친근함의 표시로 여왕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가 결례 논란으로 번진 것도 그 때문이다.
▷이란을 국빈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의 루사리 패션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루사리는 머리카락과 목을 가리는 히잡의 일종. 일부 누리꾼은 ‘여성 억압 도구인 히잡을 흔쾌히 착용한 박근혜’ ‘생각도 자존심도 없는 대통령’이라 비난했다. 모 기독교 단체는 “히잡은 곧 이슬람 신자임을 의미한다”면서 ‘굴욕적 외교’란 논평을 냈다. 그러나 이를 반박하는 소리도 높다. ‘히잡=여성 억압’이란 단순 도식이 종교의 전통과 문화 정체성을 지키려는 무슬림 여성에 대한 비하라는 지적이다. 과거 아부다비에 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머리에 스카프를 동여맨 사진을 소개하면서 ‘전통 존중의 표시’라고 박 대통령의 히잡을 옹호한 누리꾼들도 있다.
▷미셸 여사는 작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머리카락을 노출했으나 그보다 5년 전 인도네시아 방문 땐 스카프로 머리를 꽁꽁 감쌌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어땠을까? 2012년 사우디에선 히잡을 안 썼지만 2009년 파키스탄 방문 때는 착용했다. 같은 이슬람권 국가라도 그때그때 달랐던 셈이다. 청와대는 이슬람 문화와 현지 율법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루사리 착용을 결정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을 방문한 최초의 비(非)이슬람권 여성 지도자란 점도 고려했다.
▷영화 ‘킹스맨’에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대사가 등장한다. 매너란 자신이 받고 싶은 대우를 상대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진정한 글로벌 매너도 문화적 다름을 인정하면서 상대를 배려하는 데서 출발한다. 경제 협력뿐 아니라 방문국 국민에게 호감을 얻고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도 정상외교의 성과다. 내 집에 초대한 손님이 어떻게 행동하면 좋은지 생각하면 금세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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