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실수해서 ‘싹이 노랗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나랑 비슷한 이력의 사람들도 도매금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어젯밤 잠이 안 오더라.”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신임 원내대표는 5일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심경을 밝혔다. 자신의 당선과 당내 86그룹(1980년대 학번, 1960년대 출생 운동권 출신) 20여 명 전체의 정치적 운명을 동일시한 것이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총선 물갈이 전략의 하나로 제도권 정치에 발을 디딘 86그룹은 우 원내대표의 당선으로 야권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됐다. 역설적으로 정치력과 리더십 평가를 엄정하게 받아보지 못한 86그룹이 정치적 시험대에 서게 된 셈이다.
우 원내대표는 전날 당선인사에 이어 이날도 “새로운 정치세대의 전면 등장”을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남을 도와 그 사람이 잘되게 하는 정치를 했다면 이제는 직접 나서서 책임지는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이제 우리에 대한 평가는 다시 쓰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가 말한 ‘남을 도와 잘되게 하는 정치’는 그동안 ‘숙주 정치’라고 불리기도 했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정세균 손학규 문재인 같은 유력 정치인을 “숙주로 삼아 기생(寄生)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자신들과 뜻이 다른 당 리더십을 흔들어 댄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이제는 우 원내대표의 당선을 신호탄으로 세대교체를 더욱 가속화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우 원내대표와 86그룹의 리더로 불리며 지난해 2·8전당대회에서 세대교체를 내세워 당 대표에 도전했던 이인영 의원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에 (리더로서 윗세대 중에는) 문재인 전 대표 하나 남았다”고 말했다. 86그룹 중심의 50대 정치인들이 나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86그룹이 진정한 세력 교체를 이루기 위해선 경계해야 할 점이 한둘이 아니다. 4선의 조정식 의원은 “86그룹이 ‘구세대, 너희는 물러가라’ 식의 단절적인 세대교체를 고집한다면 또 하나의 오만한 권력이 될 뿐”이라며 “당의 선후배와 소통과 통합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윗세대의 지혜와 경륜을 경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철희 당선자(51)도 “매사를 옳고 그름의 이분법으로 보는 시각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내 소수파로 있을 때와 당을 리드하려고 할 때의 자세는 달라야 한다는 얘기다. 이 당선자는 “당의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이것이 86그룹이 모든 걸 다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먹고사는 민생 문제에 국민이 공감할 만한 대안을 얼마나 만들어 내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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