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적자에도 “임금 올려달라”… 회사 문닫기 직전까지 “투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6일 03시 00분


[산업 대개조/구조조정의 적들]1분기 수주 3척 그친 현대중공업… 노조는 기본급인상-해외연수 요구
도산위기 빠진 뒤에야 투쟁 중단… 쌍용車 등 후유증에 적자 못벗어
르노 스페인공장은 노사정 대타협… 임금동결-정부지원 통해 회생

4일 울산 현대중공업 본사. 10일 열리는 임금 및 단체협약 노사 상견례를 앞두고 현대중공업 노조의 임단협 출정식이 열렸다. 백형록 노조위원장은 투쟁사에서 “임금 인상 투쟁 승리의 그날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현대중공업은 9∼15일 사무직 과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한다고 노조에 밝혔다. 지난해 1월 희망퇴직 때처럼 생산직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지난달 29일엔 임원의 약 25%인 60여 명이 옷을 벗었다. 그러나 노조는 3일 홈페이지에서 “‘회사가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는 경영진 논리는 조합원을 억압하기 위한 언어폭력”이라고 주장했다.

○ 임금은 동결하지만 ‘현실 임금’은 올려라?


강성 노조 때문에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위기를 맞고 있는 조선업종이 대표적이다. 1분기(1∼3월) 현대중공업은 2013년 3분기(7∼9월) 이후 10개 분기 만에 흑자 전환했다. 그러나 1분기 수주가 3척에 그쳐 내년이면 독(dock)이 빌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조는 임단협에서 기본급 9만6712원 인상, 성과급 250% 이상 지급, 1년에 조합원 100명 이상 해외연수 등 요구안을 내걸었다.

채권단에 자구계획 동의서를 제출한 조선업체 노조들은 최근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지난해 10월 ‘회사가 정상화할 때까지 임금을 동결하고 쟁의행위를 자제하겠다’는 동의서를 냈다. 그러나 노조가 사측에 전달한 임단협 요구안에는 “매일 1시간 잔업을 보장해 ‘현실 임금’을 올려 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STX조선해양 노조는 지난해 11월 ‘인원과 임금을 포함한 인건비 절감에 협조한다’는 내용의 동의서를 냈다. 그러나 지난달 26일 STX조선해양 노조가 가입된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성명서를 내고 “사측이 노사 합의 없이 상여금 550%를 유보하고 임금성 단협 16개 조항(영유아 자녀 보육 보조금, 생일 선물 등)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고 반발했다. STX조선해양 노사는 현재까지 7차 교섭을 마쳤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조선업뿐만 아니다. 현대자동차는 1분기 영업이익(1조3424억 원)이 2011년 1분기 이후 5년 만의 최저치였다. 그러나 노조는 지난달 29일 기본급 15만2050원 인상,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등을 뼈대로 하는 단협 요구안을 사측에 발송했다.

○ 악순환 고리 끊고 노사 고통 분담해야


한국에서 제조업의 노사관계는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고 회사가 도산 직전까지 간 뒤에야 개선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간 노조가 생산물량을 볼모로 회사를 위협하면, 회사가 못 이긴 척 노조 요구를 들어주는 ‘담합식 문화’가 자초한 것이기도 하다. 이 후유증은 노사가 함께 감당해야 할 몫으로 오랜 기간 남기 마련이다.

실제 쌍용자동차는 2010년부터 매년 무분규 임단협을 타결하고 있지만 2009년 77일간 ‘옥쇄파업’을 거쳤던 노사분쟁의 후유증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엔 쌍용차와 쌍용차 노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2009년 당시 해고자 복직에 대한 합의를 이루고 신차 ‘티볼리’의 성공으로 회복 분위기를 탔지만 아직까지 연간 적자를 벗어나진 못하고 있다.

한진중공업 노사는 2012년부터 무분규 임단협을 이어오고 있다. 2013년, 5년 만에 상선을 수주할 때는 김상욱 노조위원장이 선주들에게 ‘납기 준수와 품질 보장을 약속한다’는 편지도 보냈다. 그러나 2011년 희망버스 사태의 후유증으로 일감이 줄면서 시작된 순환휴직은 지난해 3월에야 끝났다. 결국 경기 침체까지 겹쳐 1월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을 신청했다.

효과적인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노사의 상생 의지와 정부의 지원이 바탕이 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르노의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바야돌리드 공장은 2009년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사측은 “생산성을 향상하면 일감을 주겠다”고 약속했고, 노조는 임금을 동결했다. 주문이 밀리면 평일 치 임금을 받고 주말에 출근을 했다. 정부는 노사 합의하에 구조개혁에 나선 이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었고 직원 교육비를 지원했다.

전문가들은 모든 산업이 공급 과잉에 처한 상황에서 ‘상시 구조조정’을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태주 고용노동연수원 교수는 “정규직 노조가 회사의 위기를 하청업체와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전가하는 현상도 있다”며 “노동자들이 근무시간을 줄이는 대신 사측은 전체 일자리를 유지하는 식의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노조는 반대만 하고, 사용자는 채권단의 처분만 바라는 상황에서는 해법이 나올 수 없다”며 “노사가 선제적으로 인력조정 방안을 미리 협의해 ‘예측 가능한 항상적 구조조정 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는 경영상의 이유로 구조조정을 할 땐 실업급여 특례를 제공하고, 전직을 지원하는 등 사회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노조#임금#적자#임금동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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