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평양에서 열린 7차 노동당 대회에서 거론한 ‘선제 핵 불사용’을 핵 정책이나 핵전략의 중대 변화로 봐선 안 된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책임 있는 핵보유국’을 명분 삼아 어떤 경우에도 핵을 먼저 사용하지 않을 것처럼 밝혔지만 유사시 대남 핵 타격 옵션에 무게가 실려 있다는 분석이 많다. 북한의 핵무기가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의 산물이라고 포장함으로써 한국을 겨냥한 게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는 기만전술용 선전이라는 것이다.
핵전략 분야에서 통용되는 ‘선제 핵 불사용(no first use)’ 원칙은 두 가지다. 핵무기가 없는 나라에는 핵무기로 공격하지 않고, 언제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전이 벌어져 상황이 불리하더라도 상대국에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게 핵심이다.
미국과 러시아 등 5대 핵보유국 가운데 선제 핵 불사용 원칙을 공식 선언한 국가는 중국밖에 없다. 하지만 중국의 공세적인 핵 정책을 고려할 때 이를 곧이곧대로 수용하기 힘들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핵군축 협상을 거부하면서 5대 핵보유국 가운데 유일하게 지속적으로 핵전력을 증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선제 핵 불사용 선언은 실제로는 핵무기를 증강할 시간을 벌어 미국이나 러시아 등과의 핵전력 격차를 줄이려는 의도가 깔린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김정은의 ‘선제 핵 불사용’도 여러 측면에서 그 진의가 의심된다. 김정은은 선제 핵 불사용의 전제조건으로 ‘적대 세력이 핵으로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이라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불과 두 달 전까지 김정은은 ‘실전 배비(배치)한 핵탄두들을 임의의 순간에 쏴 버릴 수 있게 항시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주저 없이 미제(미국 제국주의)를 핵으로 냅다 칠 것’ 등 전제조건을 달지 않은 핵 선제공격성 발언을 쏟아 냈다.
또 북한이 2013년 3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핵 건설 병진 노선’을 선언한 뒤 채택한 ‘4·1 핵보유 법령’(10개조)에서도 선제 핵 공격 의도가 명백히 드러났다. 이 법령의 4조는 ‘적대적인 핵보유국이 공화국을 침략 공격하는 경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최종 명령에 의해 핵무기로 보복 타격을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핵이든 재래식 무기든 일단 북한이 공격받으면 무조건 핵 보복을 가할 것이라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군 관계자는 “김정은이 기존의 핵 선제공격 전략과 정책을 폐기하거나 수정한다는 공식 선언을 하지 않고 선제 핵 불사용을 거론한 것은 진정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은 ‘4·1 핵보유 법령’ 5조에서 ‘비핵국가에 대한 핵 사용 금지’도 명시했지만 이 역시 ‘적대적 핵보유국과 야합해 공화국을 침략 공격하는 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한’이라는 조건을 달고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나 일본이 북한을 공격하는 경우에는 이런 원칙이 적용되지 않으며 핵 보복이나 핵 위협을 가할 것이라는 얘기다.
군 고위 당국자는 “북한은 개전 초 또는 체제 붕괴 위기를 맞이하면 한미 연합전력에 맞서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북한이 한국을 핵으로 공격해도 미국의 핵우산(핵 보복)이 작동하기 힘들 것이라는 김정은의 위험한 인식을 바탕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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