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5일 대통령비서실장을 포함한 일부 청와대 비서진 개편 인사를 단행한 것은 4·13총선 패배 책임과 관련한 ‘인적 쇄신’ 논란을 일단락 짓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다만 예상했던 만큼 ‘개편의 폭’은 크지 않았고 오히려 친정(親政) 체제를 강화하는 내용이었다. 청와대의 경우 쇄신보다는 국정 장악에 초점을 맞춰 남은 임기 핵심 국정과제 추진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 ‘대선 공신’ 아닌 비서실장
박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내각을 바꾼다 하는 것은 생각하기가 어렵다”고 말했지만 청와대 개편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국회 청문회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청와대 개편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청와대와 내각의 분위기가 대통령의 이란 방문을 계기로 살아나고 있고, 13일 3당 원내지도부와의 회동을 통해 협치(協治)의 계기를 마련한 만큼 다시 국정 현안에 힘을 모을 때가 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행정 경험이 풍부하고 연륜이 있는 이원종 비서실장을 통해 비서실을 안정시키면서 정책 관련 수석비서관에는 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알고 있는 인물들을 전진 배치해 추진력을 높이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비서실장은 이날 인사말에서 “비서실의 힘을 하나로 합쳐 대통령께서 최적의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보좌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이원종 비서실장은 전임 이병기 전 비서실장처럼 ‘대선 공신’도 아니다. 이 전 실장보다 나이가 5세 많은 행정가 출신(74)으로 ‘관리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세’ 수석비서관들과 이른바 ‘청와대 3인방’ 사이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박 대통령이 충북 제천 출신인 이 실장을 발탁한 것은 대선 때마다 ‘스윙보터(swing voter·선거 때마다 선택을 달리하는 유권자)’ 역할을 하는 충청도의 민심을 배려하려는 뜻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내정된 정진석 원내대표는 충남 공주 출신이다. 공교롭게도 이날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김용태 의원도 대전 출신이어서 당청 주요 포스트를 충청 출신이 차지하는 모양새가 됐다.
경제수석으로 주요 경제 정책을 이끌어왔던 안종범 수석을 정책조정수석으로 옮겨 활동 반경을 더욱 넓혀줬다. 강석훈 신임 경제수석은 새누리당의 대표적 정책통인 데다 안 수석과 함께 박 대통령의 경제 공약을 수립한 인물이다. 청와대에서는 두 사람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박 대통령의 노동개혁과 경제활성화 정책에 고삐를 당길 것으로 보고 있다.
○ 정무-민정수석 유임, 정무장관은?
이번 인사에서 현기환 정무수석과 우병우 민정수석이 유임된 것은 박 대통령이 여론의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청와대 비서진만큼은 ‘자기 사람’ 위주로 쓰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임기 말로 갈수록 국정에 대한 대통령의 장악력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보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현 수석은 4·13총선과 직접 업무 연관성이 있다는 측면에서 청와대 개편 시 우선순위에 포함될 것으로 전망됐고, 우 수석에 대해서는 ‘권한이 너무 집중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총선 패배에 따른 비서진 정리는 일단락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추가 개편과 개각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 여권 관계자는 “비서실의 가장 어른인 비서실장이 책임을 지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에 총선과 관련된 인사는 없을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다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업무 필요에 따른 개각과 추가 청와대 인적 개편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아프리카-프랑스 순방(25일∼6월 5일) 이후 추가 인사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무장관이 신설되면 개각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정무장관을 누가 맡을지도 벌써부터 관심의 대상이다. 정치권에서는 총선에서 낙선한 친박(친박근혜)계 인사 중 한 명을 발탁할 것이라는 전망과 범야권 인사를 등용해 협치를 강화할 것이라는 예상이 엇갈리고 있다.
한편 이날 인사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이재경 대변인은 “총선에서 드러난 성난 민심에 최소한의 답도 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손금주 수석대변인은 “이 신임 비서실장이 대통령에게 민심을 가감 없이 직언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