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나는 한 정치인을 밤에 만났다. 그는 내년 대선에 도전할 것 같다. 그에게 ‘조직의 논리에 함몰돼 바보가 되지 말라’는 책을 선물했다. 책에 이런 글을 적어서 주었다. ‘大業(대업)을 이루려면 작은 일부터 성심껏 하라.’ 내 말이 아니다. 위대한 선각 노자(老子)의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 말과 정반대 충고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하고 싶어서다. 나는 얼마 전 칼럼에서 ‘박 대통령을 포기했다’는 표현을 두 번이나 썼다. 총선 참패를 진심으로 뉘우치며 국민에게 사과하지 않는 오만함이 싫었고, 책임을 통감해야 할 친박(친박근혜)계의 두꺼운 얼굴이 너무도 징그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경제대국에 오르게 한 박정희와 그를 내조한 인자한 육영수의 큰딸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나는 진심으로 기원했다. 그런 내가 ‘포기’라는 표현을 쓴 데는 변하지 않는 박 대통령에 대한 답답함과 더불어 나만 아는 이유도 있지만 여기선 생략한다. 글로 옮기면 치사해질 것 같아서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와 박 대통령의 인연은 순조롭지 않았다. 나는 사회부 기자를 오래 했다. 그러다 잠시 정치부를 간 것이 구룡(九龍)이 쟁투를 벌인 1996년 말. 다시 차장 때 정치부에서 1년여 근무했다. 2006년 대선을 1년 남기고 본보가 대선 주자들을 대상으로 포커스 인터뷰를 했을 때다.
일반적으로 대선 주자 인터뷰는 정치부장 혹은 편집국장이 질문지를 미리 보내 ‘받아칠’ 기자와 현장 팀장 기자 한둘을 데리고 가서 진행한다. 그때 본보는 인터뷰 형식을 파괴해 여야 일선을 담당하는 기자와 외교안보, 기타 분야의 정책을 취재하는 7, 8명의 기자가 대선 주자의 내공을 면밀히 점검하는 형식으로 차별화했다.
직전 이명박 후보를 인터뷰할 때 나는 가보지 못했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 인터뷰 때 당시 부장이 나보고 “같이 가자”고 해서 첫 인연이 닿았다. 한국언론재단이 있는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인터뷰 가는 길에 부장이 나에게 “최태민 목사와 관련한 내용을 질문하라”고 지시했다. 나는 처음엔 젊은 기자에게 맡기라며 강하게 거부했다. 그러나 “젊은 기자가 질문하면 제대로 답을 하겠느냐. 수석차장이 권위 있게 질문해야 한다”는 부장의 주문에 내키지 않았지만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뷰 중반 그 질문을 내가 하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갔다. “내가 귀(貴) 신문의 자매지인 신동아에 장문의 인터뷰를 해 자세하게 경위를 말했으니 보세요.” 기자정신이 투철한 정치부장이 인터뷰 말미에 옆에 앉은 나에게 다시 쪽지를 보냈다. ‘최태민 목사 건 보충질문 해 주세요.’ 눈을 질끈 감고 나는 다시 질문했다. 아, 그때의 난감함이란….
몇 년 뒤, 초선 의원이던 친박계 인사에게 박 대표와 자리를 만들어 달라 했다. 그때의 기억을 박 대통령이 잊지 않았는지도 알아볼 참이었다. 그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오가는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만 있던 나를 빤히 바라보며 “다들 ×× 의원과 친한 분들인데 선거할 때 현장에 가보셨나요”라고 했다. 몹시 싫은 질문을 두 번이나 한 나를 기억하는 눈치였다.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지금도 위대한 박정희와 육영수의 DNA를 물려받은 대통령이 성공하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부디 작은 일들은 밑에 맡기고, 외교안보나 경제 살리기 같은 큰일, ‘대통령 프로젝트’만 잘 챙기시길. 대통령에게 보내는 마지막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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