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상임위원회 차원에서 각종 현안에 대해 청문회를 열 수 있도록 한 개정 국회법이 ‘협치(協治) 정국’의 새로운 돌발변수로 떠올랐다. 청와대가 “행정부를 마비시킬 수 있다”며 반발하면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6월처럼 거부권을 행사하면 정국은 급랭할 것으로 보인다. 당시 정부 시행령의 국회 수정 권한을 강화한 개정 국회법을 두고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유승민 전 원내대표 퇴진 등 여권 내전(內戰)이 촉발됐다.
청와대는 공식적으로 개정 국회법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 참모는 20일 “야당이 매일 청문회를 열면 행정부가 일을 못 하게 되는 것 아니냐”며 “내년 대선을 앞두고 야당이 청문회를 정쟁의 장으로 삼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국회법 개정을 주도한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날 ‘공용화장실 살인 사건’을 예로 들며 “어떤 사안이 벌어지면 그때그때 대처해야 한다. (상시) 정책 청문회가 더 철저하게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펼 수 있는 ‘메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 의장은 새누리당과 협의 없이 법안을 직권 상정했다는 주장에 대해 “여야가 2년간 협의한 결과로 소관 상임위와 법제사법위를 통과해 지난해 7월 본회의에 부의된 법안”이라며 직권 상정이 아님을 강조했다. 이어 “의장은 로봇이 아니다. 의장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은 스스로 누워서 침을 뱉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개정 국회법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세 단어’다. 기존 법에서는 ‘중요한 안건 심사’를 위해 상임위의 과반 의결이 있으면 청문회를 열 수 있도록 했다. 이번에는 여기에 ‘소관 현안 조사’가 추가됐다. 안건은 통상 법률안이나 결의안 등 회의의 공식 의제를 뜻한다. 반면 현안은 안건으로 상정돼 있지 않은 사회적 중대 이슈를 의미한다.
야당은 20대 국회가 열리면 개정 국회법에 따라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어버이연합 불법 자금 지원 의혹에 대해 청문회를 열 계획이다. 기존 국회법에서도 현안 청문회는 가능했다. 다만 현안별 국정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절차가 까다로웠다. 상임위 차원에서 청문회를 쉽게 열게 되면 정부 관계자가 국회로 불려나올 가능성은 더 크다.
하지만 지금도 여야가 합의하면 상임위 차원에서 수시로 긴급 현안질의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정 국회법이 행정부를 마비시킬 것이란 주장은 과장됐다는 반론도 있다.
청와대는 거부권 행사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지난해 개정 국회법은 정부의 행정입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헌 소지가 있었지만 청문회 개최 요건을 완화했다고 위헌으로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여소야대에서 개정 국회법의 재의결이 무산된다는 보장도 없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가 찬성하면 법안으로 확정된다. 20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여야 협치에 찬물을 끼얹는 것도 부담이다. 더욱이 이전 국회가 통과시킨 법안을 새로 구성된 국회에서 재의결한 전례도 없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의회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라며 “(청문회가) 남용될 거라는 우려는 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도 “(거부권 행사는) 총선 민의를 또 한번 짓밟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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