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이나 관료가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노심초사할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자신의 인사 문제가 최우선이다. 인사를 꿰면 취재는 저절로 된다.”
정치부 기자 초년병 시절 선배가 알려준 취재 비법이다.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걸 확인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공익을 위해 봉사해야 할 자리지만, 권력 엘리트들의 관심은 언제나 자신의 ‘자리’였다.
대체 정치는 왜 하는가
‘선거만 없으면 지상 최고의 직업’이라는 말이 반증하듯, 국회의원 최우선 관심사는 차기 총선에서의 당선이다. 그 다음 원내대표, 사무총장 같은 당직이나 국회 의장·부의장, 상임위원장 같은 국회직에 군침을 삼킨다. 관료의 최대 관심은 물론 승진. 그것도 어떤 자리로 가느냐다. 그들이 원하는 자리의 경쟁자나 장애 요소, 인사의 키를 쥔 인물 등을 읊으며 때론 맞장구도 쳐주고 하면 어렵던 취재가 술술 풀리는 경우가 많았다.
20년도 더 된 취재 후기를 떠올린 이유는 요즘 들어 부쩍 ‘도대체 정치는 왜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어서다. 특히 막장 공천 분탕질부터 총선 참패 이후 한 달 보름이 다 되도록 계파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집권세력을 보면서 ‘국리민복을 위하는 척이라도 해주면 안 되나’ 하는 심정마저 든다. 이 지경이 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오만과 친박의 패권주의가 첫째 원인이지만, 비박계라는 사람들도 잘한 건 없다. 원 구성 협상을 앞두고 친박 좌장 최경환 의원을 만나려는 비박계가 줄 섰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국회 부의장이나 상임위원장 같은 국회직을 노리고 최 의원의 지원 약속을 얻어내려는 그들을 보면 ‘정치란 과연 이런 것인가’ 하는 허무감마저 든다.
새누리당이 혁신의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선거가 끝났기 때문이다. 당선이 최우선인 정치인들이 금배지를 거머쥔 이상 혁신에 조급할 이유도, 국민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정진석 원내대표만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형국이다. 하지만 벌써 그에게 ‘김무성의 그림자가 비친다’는 소리가 나온다. 둘 다 집안 좋고, 인물 좋고, 사람 좋고, 기자들도 좋아하지만 너무 ‘좋은 게 좋은’ 사람이란 얘기다.
흔히 국회의원에게 4선은 ‘선택의 기로’라고 한다. 지역구 관리에 기대어 5선을 하려면 공천에서 기득권 배제 케이스로 탈락하거나, 본선에서 지역구민의 피로감 때문에 떨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 때문에 4선 안팎에서 광역단체장 선거로 방향을 돌리거나 이도저도 안 되면 불출마를 선언하는 의원이 많다. 정진석은 4선을 했지만 당적을 이리저리 바꾸거나 비례대표를 하면서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차기 총선 불출마든, 정계은퇴든 정치생명을 걸고서라도 혁신에 올인(다걸기)하라. 정치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다.
“보수 유권자도 재집권 포기”
시중에는 보수성향 유권자들마저 새누리당의 재집권을 포기했다는 말이 파다하다. 집권보다는 눈앞의 소리(小利)에 매몰된 집권세력에 대한 깊은 배신감의 발로다. 문제는 집권세력이 환골탈태하지 않는 한, ‘좌우 정권교체 10년 주기론’이 자연스럽게 먹히는 토양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그룹 중 하나인 탈북자 출신 사업가는 최근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비해 더 좋은 것도 없었다. 야당이 집권해도 더 나빠질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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