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직권상정을 제한하고 가중 다수결(5분의 3)을 법안 신속처리 요건으로 정한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국회의원의 권한을 침해할 위험성이 없다”며 직접적인 판단을 유보하면서도 결정문 곳곳에 ‘국회의 의사자율권’에 대한 지지를 드러냈다. 쟁점 조항들의 위헌 여부 판단은 하지 않았지만 실제 본안 판단이 이뤄졌을 경우 결과를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 헌재 결정의 다수 의견은 핵심 쟁점이었던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비상적·예외적 입법 절차’로 보고 그 요건을 △여야 합의 △천재지변 △국가 비상사태 등 3가지로 한정한 조항(국회법 제85조 1항)을 합의제를 강화하려는 입법자의 고려라고 판단했다.
각하 결정을 낸 5명의 재판관은 “직권상정을 제한하는 것은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의 의회정치 정상화를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국회의 입법형성권이나 의사자율권을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국회선진화법에 재적 의원의 과반수가 요청하면 직권상정을 의무화하는 조항이 마련돼 있지 않아 ‘입법 부작위’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헌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며 국회에 공을 넘겼다.
나머지 본안 판단이 필요하다고 밝힌 4명의 재판관은 인용 2명, 기각 2명으로 의견이 팽팽히 갈렸다. 이진성 김창종 재판관은 “직권상정 제도를 어떤 방식으로 도입할지는 입법자의 광범위한 재량에 포함된다”며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반면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은 “국회 의사를 결정하는 주체는 본회의”라면서 “직권상정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해 비상처리 절차로서의 기능이 사라졌다”며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다. 조 재판관은 특히 “국회선진화법은 대화와 타협에 따른 합의가 안 되는 비상사태에 대한 대비가 없어 소수 독재의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 주목했던 신속안건처리 절차의 5분의 3 가중 다수결 요건(제85조의2 1항) 역시 본안 판단이 이뤄지지 못했다.
재판관들은 “소관 상임위원회 재적위원 과반수의 서명 요건을 갖추지 못해 청구인의 표결권이 직접 침해당할 가능성이 없다”며 전원 일치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신속처리안건 지정 동의가 과반수의 서명으로 제출돼야 비로소 위원장도 표결을 실시해야 하는 부담을 지는데, 전제요건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위원장이 이후 절차를 거부했더라도 위원들의 권한 침해 여부를 논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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