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5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정부세종청사 기자실을 불쑥 찾았다. “그냥 와 봤다”는 말과 달리 ‘꼭 할 말이 있는데 질문 좀 해 달라’는 표정이었다. 땅콩을 집어 먹던 부총리는 “기업인 사면 논란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자세를 고쳤다. “기업인이라고 너무 엄하게 법을 집행하면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 정치적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발언이지만 그만큼 기업인을 감옥에 너무 오래 둘 수 없다는 정부 내 기류가 강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2000∼2007년 유죄가 확정된 기업인의 형량을 분석해보니 재벌 총수나 가족, 재벌 임원이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을 가능성은 일반인보다 10%포인트 높았다. 이런 경향을 반영한 것이 ‘3·5 법칙’이다. 유죄가 선고된 대기업 일가의 형량은 보통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라는 말이다.
▷미국도 다르지 않은 듯하다. 미국 법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 등이 2009년 이후 10개 대형은행을 대상으로 제기한 156건의 소송 분석 결과 실제 기소된 사람은 47명이고 이 중 임원은 1명뿐이었다고 어제 월스트리트저널은 보도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것이 미국 투자은행들이었는데도 실제 쇠고랑을 차는 사람은 드물고, 있다 해도 임원은 잘 빠져나간다는 의미다. 역시 대형은행은 법의 허점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꼬리 자르기로 책임을 면하는 데 능숙하다는 점이 입증된 셈이다.
▷미국에서 ‘Too big to fail(너무 커서 못 죽인다)’이라는 말은 최근 들어 ‘Too big to jail(너무 커서 감옥에는 못 보낸다)’과 함께 거대자본의 문제점을 꼬집는 말로 자주 인용된다. 전자는 대마불사(大馬不死), 후자는 대마불옥(大馬不獄)이다. 우리나라도 대마불사 대마불옥의 관행 때문에 기업인들의 비리가 그치지 않고 구조조정이 꼬인다는 시각이 있다. 조선업 부실을 초래한 대우조선해양 전 사장, 난파선에서 먼저 뛰어내린 한진해운 전 회장, 부실을 덮어온 채권단의 잘못에 눈감는다면 법치(法治)가 바로 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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