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10명 중 6명 답변 거부…제2 가습기 사건 막는 법안에 소극적인 국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30일 23시 52분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을 막기 위해 소비자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적용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이를 위해 관련법을 제·개정해야 하는 제20대 국회의원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전문가들은 적용 범위가 극히 제한적인 두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가습기 살균제 최대 가해업체인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와 같은 기업들의 부도덕한 행위를 막고 소비자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대로라면 30일 공식 임기를 시작한 20대 국회에서도 과거처럼 두 제도의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10명 중 6명 답변 거부

한국YWCA연합회, 한국소비자연맹, 녹색소비자연대 등 10개 단체가 참여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소협)는 지난달 20일부터 이달 13일까지 20대 의원 300명을 대상으로 소비자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적용 대상 확대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소협은 그 결과 173명(57.6%)이 답변을 거부했다고 30일 밝혔다. 소협 관계자는 “5차례 이상 요청했지만 ‘당론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거나 ‘모르는 분야’라는 이유로 답변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의원 10명 중 6명이 법안 확대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셈이다.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의 응답률이 가장 저조했다. 122명 가운데 41명(33.6%)이 응답하는데 그쳤다. 더불어민주당은 전체 123명 중 61명(49.6%), 국민의당은 38명 중 20명(52.6%)이 응답했다.

응답한 의원들 중에서는 정당을 가리지 않고 두 제도의 적용 대상 확대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소비자 집단소송제 확대에 관해서는 새누리당 응답 의원 87.8%가 찬성했고, 더민주당과 국민의당 응답 의원들은 100% 찬성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에는 새누리당 80.5%, 더민주당 93.4%, 국민의당 70.0%의 찬성률을 보였다.

두 제도 확대에 모두 반대의사를 밝힌 한 새누리당 의원은 “이번 국회에서 공론화할 수는 있겠지만 국내 기업구조, 법체계와 맞지 않아 일반적인 경우까지 적용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본다”고 말했다. 기업 활동을 과도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에 반대한 국민의당 의원은 “소비자 집단소송제를 통해 합리적 배상이 이뤄진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제까지 확대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소협 관계자는 “이번 결과를 토대로 20대 국회에서 두 제도의 적용범위 확대가 입법화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국회를 모니터링하겠다”고 말했다.

●부도덕한 기업 제동 장치 부족

소비자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그 적용 대상이 매우 제한적이라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소비자 집단소송제는 다수의 피해자가 같은 피해를 당했을 때 일부가 제기한 소송의 효력을 다른 피해자들도 누릴 수 있게 한 제도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은 광범위한 소비자 피해에 대해 이 제도를 인정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증권관련 피해에 국한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역시 제한적이다. 기업의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인 행위로 피해를 입었을 때 실제 피해액보다 많은 배상을 하도록 하는 이 제도는 국내에서는 하도급 거래와 기간제 근로자 파견, 신용 및 개인정보 이용 등의 피해에 한해 인정된다.

기업들, 특히 외국 기업들은 이런 허점을 악용해 유독 국내 소비자 피해에 안하무인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에도 여러 차례 두 제도의 적용 범위를 넓히려는 입법 시도가 있었지만 ‘기업 옥죄기 법안’이라는 이유로, 또 소송이 남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번번이 무산됐다.

●20대 국회 다그치는 시민단체들

소비자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려는 시민단체는 소협 뿐만이 아니다.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도 소협과 함께 두 제도의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이달 초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시민단체 공동 입법안을 마련한 뒤 뜻을 함께 하는 의원들을 통해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최근 각 단체별로 법안을 만들되 입법을 촉구하는 활동은 함께 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참여연대는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두 제도의 적용범위 확대를 20대 국회에서 가장 시급한 5대 입법 과제 중 하나로 선정했다.

김호경기자 whalefisher@donga.com
김동혁기자 h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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