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포기 없다는 이수용… 시진핑, 만나준것 자체가 ‘核 묵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일 03시 00분


[시진핑, 北 이수용 면담]

1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이수용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면담으로 얼어붙었던 두 나라 관계는 전환의 계기를 마련했다. 북한은 3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에 이어 지난달 스위스와 유럽연합(EU)의 독자 제재가 잇따라 나오면서 외교적으로 갈수록 곤경에 처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가운데 김정은의 특사가 중국 최고지도자를 면담하면서 북한이 중국을 등에 업고 ‘포위 탈출 외교’의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관영 신화통신이 전한 시 주석과 이 부위원장의 대화 내용만 보면 북한의 핵실험과 잇단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는 원론적인 주문과 답변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이날 면담에서 “유관 당사국들이 냉정과 절제를 유지하고 대화와 소통을 강화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도발 자제를 촉구한 것이지만 상당히 완화된 표현이라는 평가다. 이 부위원장은 김정은의 구두친서를 통해 양국 관계의 복원 의지를 내비쳤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중국정책연구소장)는 “시 주석이 언급한 ‘냉정과 절제’는 이제 더 이상 사고치지 말라는 뜻”이라며 “그러나 북-중 모두 서로의 핵심적인 주장은 수용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관계 개선의 새 돌파구를 찾았다기보다는 북-중 관계와 한반도 정세가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은 양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에 의견 일치를 본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 주석이 이 부위원장을 만난 것을 놓고 지난달 열린 북한 7차 당 대회의 핵심 기조인 ‘핵과 경제 병진’ 원칙을 중국이 간접 승인해 주는 모양새가 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날 회견을 전한 신화통신은 양국의 전통적 우호 강조와 7차 당 대회에 대한 덕담을 강조해 상대적으로 비핵화 부분을 소홀하게 취급했다.

북한이 이 부위원장의 방중을 계기로 중국이 자신들의 ‘핵-경제 병진’ 노선을 지지하는 것처럼 알리는 선전전에 나서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일 이 부위원장이 전날 쑹타오(宋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만나 북한의 핵-경제 병진 노선을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쑹 부장이 “중국 당과 정부는 김정은 위원장을 수반으로 하는 조선노동당과 인민이 자기의 실정에 맞는 발전의 길로 나가는 것을 확고부동하게 지지한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를 놓고 중국이 북한의 핵-경제 병진 노선을 지지한 게 아니라 전통적 친선 관계를 염두에 둔 원론적인 언급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중요한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신화통신을 통해 소개된 양측의 대화 외에 북한 비핵화와 관련된 내용이 오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북한은 지난달 7차 당 대회에서 핵-경제 병진 원칙을 천명했기 때문에 핵 포기와 같은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시 주석이 이날 이 부위원장을 만난 것은 유엔의 대북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전략적으로 큰 가치가 있는 북한과의 관계를 2년 이상 냉각 관계로만 둘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더욱이 한미일 3국이 일본에서 중국을 뺀 3자회담을 가지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최근 베트남과 일본을 거치며 대(對)중국 포위 외교에 나서는 상황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남중국해에서도 미일 대 중국의 대립 구도가 점차 첨예해지는 상황에서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 명분 때문에 전통 우방인 북한과 악화된 관계를 계속 방치할 수 없다는 실리적 판단도 작용했다는 관측이다.

중국 최고지도자와 북한 특사의 만남을 지켜보는 우리 정부의 속내는 무척 복잡하다. 대북 제재의 한 축이던 중국의 시 주석이 전격적으로 면담에 응한 것은 북-중 관계 개선을 바라는 북한의 요청에 화답하는 모습으로도 비치기 때문이다.

시 주석이 이 부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전달한 ‘유관 당사국들이 냉정과 자제를 유지하고 대화와 소통을 강화함으로써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를 희망한다’는 메시지가 북한에 대한 경고성 의미를 담고 있지만 이는 한국을 향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자제하라고 할 때의 얘기와 같다는 점에서 정부는 우려하고 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북한이 5차 핵실험을 자제한 만큼 제재에서 대화로 넘어갈 수 있는 타이밍으로 중국은 판단했을 것”이라며 “한미일이 가까워지면서 중국이 북한을 끌어안고 있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폐쇄까지 하면서 강공에 나섰던 한국 외교에 까다롭고 도전적인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우경임 기자
#핵포기#이수용#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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