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외교부장관이 5일(한국 시간) 한국 외교수장으로는 처음 쿠바를 방문한 것은 ‘북한 고립외교’의 결정판에 해당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초 이란, 지난달 말 우간다를 방문한 것에 이어 북한의 우방국을 통한 간접적 대북 압박에 해당한다. 핵심 외교 당국자는 5일 “윤 장관이 이란, 우간다에 다녀온 뒤 쿠바를 방문한 것은 대북압박 외교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명시적으로 얘기하지 않아도 모두 아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장관은 지난해 2월 국회에 출석해 “연내 쿠바와 관계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성사시키지 못했다. 쿠바가 맹방인 북한을 버리고 한국 쪽으로 오는 것을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에 우호적인 혁명 1세대들이 여전히 주요의사결정을 담당하는 국가평의회를 장악하고 있어 ‘북한을 버리는’ 문제에 대해선 회의적이라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기관 관계자는 “2011년부터 집권한 라울 카스트로는 형인 피델 카스트로만큼 카리스마가 없기 때문에 평의회를 어느 한 쪽으로 끌고 가기가 어렵다. 당분간 대외기조는 현재 수준에서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울의 임기는 2018년까지다. 북한은 3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명의로 생일을 맞은 라울에게 축전을 보낼 만큼 돈독한 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쿠바와 수교, 북한과 관계축소’를 요구하는 조급함을 보이기보다 중장기적으로 관계를 개선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도 쿠바와 이해관계의 접점을 넓히는 방법을 통해 분위기 조성에 먼저 나선다는 구상이다. 윤 장관에 앞서 쿠바가 의장국을 맡은 ‘카리브국가연합(ACS) 정상회의’에 참석한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은 4일 카리브해 도서 해안의 모래 침식 방지사업에 수백만 달러 규모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이 카리브 국가들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조급해한다고 쉽게 성과가 나온다고 장담하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경제적 관계 확대를 통한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이 냉전외교에 얽매여 있는 동안 주변국들은 꾸준히 쿠바와의 관계를 개선해 왔다. 특히 미국과의 관계개선 이후 각국의 애정공세가 쇄도하자 쿠바는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기 시작했다. 자칫 서두르다간 한국만 애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역대 쿠바의 최대 무역상대국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이념적으로 친밀한 베네수엘라였다. 하지만 베네수엘라가 국제 유가 하락, 우고 차베스 대통령 사망 이후 급격히 영향력을 잃자 그 빈 자리를 중국이 메우고 있다. 2015년 중-쿠바 무역액은 14억9400만 달러로 한-쿠바 교역액(5800만 달러)의 2000배가 넘는다. 현재 중국은 쿠바의 2대 교역파트너로 쿠바 주요 수출품인 니켈의 최대 수입국이다. 쿠바 수입차 가운데 중국산이 50%를 차지하고 있으며 중국은 화웨이(통신기업)를 통해 쿠바 정부와 합작회사인 에테스카를 설립해 전화·인터넷망을 독점했다. 2014년에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직접 쿠바를 방문했고 주 3회 양국을 오가는 직항노선이 운항할 정도로 친밀도가 높다.
미국의 맹방인 일본도 쿠바 외교에서는 장기적인 실리외교를 추구해왔다. 1929년 국교를 맺은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쿠바와 교전상대였으나 종전 후인 1952년에 복교했다. 1961년 통상협정을 체결하는 등 일본은 냉전 시절에도 쿠바와 우호관계를 유지했고 지금까지 75억 엔(약 820억 원)의 공적개발지원(ODA), 615억 엔(약 6700억 원)의 차관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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