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5일(현지 시간)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장관을 만나 쿠바 방문의 의미를 ‘인류에게 큰 도약’이라는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의 언급으로 대신했다. 북한의 우방으로 자리매김했던 쿠바에 한국 외교 수장이 간 것 자체가 암스트롱의 달 착륙에 버금갈 정도라는 의미였다. 윤 장관은 쿠바의 독립영웅인 호세 마르티의 시(詩) ‘관타나메라’를 언급하며 아늑하고 포근한 쿠바의 정경이 인상 깊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양국 외교장관이 마주 앉은 것은 1959년 외교관계를 단절한 이후 처음이다.
이날 대화는 수교 문제를 비롯한 양자 이슈, 글로벌 협력 등 상호 관심사 전반에 걸쳐 주고받기식의 활발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회담은 당초 예정된 30분을 넘겨 75분간 진행됐다. 쿠바를 관할하는 전비호 주멕시코 대사, 임기모 외교부 중남미국장, 이상화 외교부 장관 보좌관이 배석했으며 쿠바 측에서는 헤라르도 페냘베르 양자총국장(차관보), 미겔 라미레스 아주국장, 바바라 몬탈보 외교장관 비서실장이 나왔다.
회담 후 윤 장관은 기자들을 만나 “진지하고 허심탄회한 가운데 회담이 진행됐다. 양자, 지역, 글로벌 이슈에 대해 폭넓은 의견교환을 했다”고 말했다. 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앞으로 접촉을 계속하고 다양한 후속 협의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다양한 양자 방문 또는 접촉을 예고한 셈이다.
하지만 회담장의 모습 자체는 미수교 상태인 양국 관계를 긴 안목을 갖고 풀어야 한다는 숙제도 보여줬다. 통상적인 외교회담과 달리 회담장에는 양국 국기가 걸리지 않았고 취재진의 접근도 엄격히 제한됐다. 취재진의 현장 촬영은 단 1분만 허용됐으며 쿠바 측은 막판까지 한-쿠바 외교장관 회담 장면을 공개하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했다.
외교 소식통은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1986년 방북해 북한과 맺은 친선협력조약을 잘 봐야 한다. 조약의 내용은 ‘두 개의 조선(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쿠바가 한국과 수교하려면 이 조약을 무시하든지 북한과 완전히 새로운 조약을 맺어야 한다”고 말했다. 쿠바로선 어느 것도 쉽지 않은 선택에 해당한다. 지난해 쿠바의 고위 관리는 한국 인사들을 만나 한-쿠바 수교 전망을 우호적으로 언급했다가 이 사실이 보도된 뒤 북한의 항의를 받고 경질되기도 했다.
한편 윤 장관은 이날 오후 한국 외교장관으로는 처음으로 쿠바 아바나의 한인후손회관을 방문해 “한인 후손 여러분이 쿠바에서 한인 정체성을 위해 활동하는 것에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현재 쿠바에는 한인 후손 1119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