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등 37社 ‘대기업 명찰’ 도로 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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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 못잡는 공정위, 잇단 헛발질

정부가 8년 만에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자산 5조 원에서 10조 원으로 올린다. 이에 따라 올해 4월 대기업집단으로 신규 지정된 벤처기업 카카오도 9월부터 대기업에서 제외된다. 그동안 경제 규모가 커짐에도 ‘대기업 봐주기’ 논란을 의식해 8년간 제자리걸음을 하던 자산 기준이 대통령 말 한마디에 2배로 늘어났다. 전형적인 ‘뒷북 행정’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9일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현행 자산 5조 원에서 10조 원으로 일괄 상향키로 했다. 자산 규모 1위인 삼성(348조 원)과 65위인 카카오(5조 원)는 70배가량 격차가 있는데도 똑같은 규제를 받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반영한 조치다.
 
▼ 8년째 대기업 기준 안바꾸던 공정위… 대통령 “고쳐야” 한마디에 뒷북행정 ▼

지정 기준 변경으로 65개인 대기업집단은 시행령이 개정되는 9월부터 28개로 37개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공정위는 한국전력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기업집단도 대기업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공기업은 공공기관운영법, 지방공기업법 등을 통해 공정거래법 수준의 규제를 이미 적용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또 공정위는 3년 주기로 대기업집단 기준의 타당성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되면 상호·순환출자 금지, 채무보증 제한 등 38개 법령의 규제에서 벗어나 신사업 진출 등 사업 영역 확대가 가능하다. 다만 이번 조치가 재벌 특혜, 경제민주화 후퇴로 비치는 것을 의식한 듯 일감 몰아주기,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규제는 현행대로 5조 원을 유지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2007∼2015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49.4%), 대기업집단 자산 합계 증가율(101.3%) 등 경제 여건 변화를 반영해 현실화할 필요가 있어 지정 기준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대기업집단 제도 개선 과정에서 뒷북 행정과 관료주의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에선 변화한 경제 환경에 맞게 대기업집단 기준을 바꿔 달라고 수차례 건의해 왔지만 그럴 때마다 공정위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그러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4월 언론사 편집국장·보도국장 기자간담회와 5월 제5차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대기업집단 지정은 한국에만 있는 제도로 시대에 맞게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자 비로소 개선 작업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중앙부처 한 공무원은 “규정 변경 책임은 오롯이 담당자가 진다”며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사안이 아니고선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 상향 조정에 대해 기업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카카오 등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된 기업들은 환영했지만 중소기업계는 반발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카카오, 하림 등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택시, 대리운전, 계란 유통업 등 골목상권 위주로 진출해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며 “산업, 업종별로 면밀한 분석과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종=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 임우선 기자
#대기업#카카오#박근혜#공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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