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동남권 신공항 후보지 중 한 곳인 부산 가덕도를 방문했다. 그는 “부산시민은 입지선정 절차가 객관적이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되고 있느냐에 대해 걱정하고 분노하고 있다”며 “일방적으로 평가가 진행된다면 그 결과를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공항 후보지로 가덕도와 경남 밀양을 놓고 부산과 대구·경북·울산·경남 간 대립이 첨예한 상황에서 문 대표의 처신은 지역 대결구도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경솔하기 짝이 없다.
문 전 대표는 4·13총선 전 부산시민이 더민주당 의원을 5명만 뽑아준다면 현 정부 임기 내 신공항 착공을 반드시 성사시키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가덕도 방문은 부산에서 5명이 당선된 만큼 공약 이행 차원이라고 둘러댈지 모르겠다. 하지만 총선 5일 전 광주를 찾아 “(호남에서)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시면 미련 없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총선 결과 호남 28석 중 3석밖에 얻지 못해 참패했지만 그는 정계 은퇴를 번복하고 조급한 대권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신공항 갈등을 먼저 점화시킨 것은 대구에 지역구를 둔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이다. 조 의원은 3월 말 시당 발대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에 선물 보따리를 준비하고 있다”며 동남권 신공항 입지를 둘러싼 지역 대결의 승리를 은연중 암시했다. 당시 원내 수석부대표로 친박(친박근혜) 핵심인 조 의원은 대통령이 밀양에 기운 것처럼 총선용으로 분위기를 잔뜩 띄웠다. 이에 새누리당 부산시당이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포함한 총선 공약을 발표하면서 맞불을 놓았다. 급기야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 간 지역 대결이 점화되면서 ‘신공항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작년 1월 5개 시도의 유치 경쟁 자제 합의는 이내 휴지조각이 됐다.
부산·경남의 관문인 김해공항은 2023년 포화상태가 돼 신공항 건설을 서둘러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공약인 신공항은 극심한 지역 대결의 벽을 넘지 못해 2011년 백지화됐다. 입지 선정 용역을 맡은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두 지역의 상대 깎아내리기에 당혹해한다니 참으로 나라 망신이다. 정치권이 TK·PK로 갈려 진흙탕 싸움에 골몰하면 신공항은 결국 다시 표류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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