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부 대책이 조선, 해운 등의 부실을 도려내는 데에는 일부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어떻게 해야 할지 청사진이 없다.”
4·13총선 이후 ‘산업 대개조’가 시급하다는 지적에 따라 정부가 2개월여 만에 내놓은 산업-기업 구조조정 대책에 대해 전직 경제 수장과 경제 전문가들로 구성된 10명의 동아일보 자문단은 9일 이같이 평가했다.
단기간에 내놓은 대책치고는 낙제점은 아니지만,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 조성 등 구조조정의 실탄 마련을 두고 논란이 불거지면서 정작 중요한 산업 구조개혁의 밑그림을 마련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 부담인 나랏돈 12조 원을 투입해 구조조정을 시작한 만큼,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한국 경제의 차세대 먹거리를 찾는 작업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충고도 나왔다.
○ “산업 대개조의 청사진이 없다”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의 10조 원 간접출자 등으로 ‘12조 원+α(플러스알파)’의 구조조정 재원을 조성하겠다는 정부 대책에 대해 과잉공급 산업의 군살을 빼는 수준에 그치다 보니 미래의 청사진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가 발표한 대책 이상의 무언가를 내놓는 것을 현재 상황에서 기대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산업 개편의 밑그림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을 정부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컨트롤타워 정립 등 구조조정의 형식과 틀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기서 어떤 논의 결과를 도출하느냐에 따라 구조조정의 성패가 갈린다는 것이다.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미래의 한국 조선업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부가가치를 어떻게 높일지 등에 대한 청사진이 빠졌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또 “영국 스웨덴 일본 등 과거 양(量)으로 승부했던 국가들이 고부가가치 선박을 만들고 설계, 디자인 등의 기술을 높여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정부 대책에 정치적 중립성 확보 대책, 국책은행 기능 재정립 방안 등 구조조정의 성패를 좌우할 중요한 내용이 빠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한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은 신속한 의사결정이라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전문성 및 정치적 독립성 확보 측면에는 약점이 있다”며 “정치적 논리에 어떻게 휘둘리지 않을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경제연구부장은 “국책은행이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기능에만 치우쳐 스스로 은행임을 망각한 측면이 있다”며 “이제는 국책은행도 ‘은행’이라는 지위에 보다 방점을 둬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 “소모적 논쟁 접고 구조조정 속도 높여야”
이번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가장 첨예했던 논란거리는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의 자금을 정부와 한은이 얼마씩, 어떤 방식으로 분담할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정부가 9월 말까지 1조 원 규모의 현물출자를 하고 한은이 10조 원의 간접출자를 하기로 가닥을 잡았지만 한은 발권력을 동원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이 뜨겁다. 전문가들도 “금융 안정을 꾀해야 하는 법적 책임이 한은에 있는 만큼 자본확충펀드 참여는 적절했다”(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평가와 “한은 발권력 동원은 나라가 휘청거릴 정도의 위기 때나 하는 것”(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라는 지적이 엇갈렸다.
하지만 방식이 정해진 만큼, 소모적인 논쟁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결과론이지만 한은 간접출자 방식을 선택할 것이었다면 두 달 가까이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며 “한은 참여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지금은 구조조정의 속도를 높이는 데 집중할 시기”라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경제학)도 “재정을 통한 국책은행 자본 확충이 바람직하지만 여러 여건을 감안하면 차선의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번 대책에서 미처 다듬지 못한 출자 방식의 세밀한 부분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경제학)는 “한은 대출금 10조 원에 손실이 발생할 경우 결국 정부가 재정으로 메워야 하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이를 어떻게 보증할지 국회 등에서 면밀히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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