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혁신위원장에 내정됐다 ‘친박 쿠데타’로 물러났던 김용태 의원이 어제 “당의 계파는 친박(친박근혜)계 하나뿐”이라며 “새누리당에서 계파를 해체하라고 한다면 친박이 해체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여당이 ‘2016 새누리당 국회의원 정책 워크숍’에서 “이 순간부터 계파라는 용어는 쓰지 않을 것”이라며 ‘계파 청산 선언’을 발표한 지 이틀 만이다. 선언문 잉크도 마르기 전에 나온 정면 반박은 ‘계파 청산’이 관제(官製) 선언과 다름없는 이벤트였음을 드러낸 것이다.
김 의원이 “계파란 사람들 무리에 들어가서 이득을 봐야 하고 대장과 그 아래 서열구조, 운영원리가 있다”며 따라서 비박(비박근혜)은 계파가 아니라고 한 말도 일리가 있다. 4·13총선에서 새누리당 참패 이유로 첫손에 꼽히는 것이 바로 이런 ‘친박 패권주의’다. 혁신비상대책위원회가 여는 첫 워크숍이면 이 같은 총선 패배 원인에 대해 끝장토론이라도 벌여 반성과 개혁안을 도출해내고, 그 결과물로 계파 청산 선언을 내놓았어야 옳다. 그런데 친박계에선 총선 참패 책임을 따지는 것이 계파 조장 행위라는 무책임한 주장까지 하고 있다. 그러니 뒤늦게 친박 해체 요구가 나오는 게 아닌가.
새누리당 워크숍에선 교육·복지, 주거·환경, 일자리·경제, 청년·소통 같은 정책과제를 놓고 1시간 30분씩 분임토론을 했다고 한다. 계파 청산 선언의 배경이 된 공천 파동과 총선 참패 책임, 탈당 의원 복당 같은 핵심 사안을 아예 토론 주제에서 뺐다는 것은 김희옥 혁신비상대책위원장에게 혁신의 의지가 없다는 얘기다. 위원장이 된 뒤 “사적인, 정파적인 이익을 위한 파당은 국민 지지를 떠나게 한다”며 획기적인 쇄신 방안을 마련하겠다던 다짐은 허언(虛言)이었던 모양이다. 혁신 논의가 실종된 것을 문제 삼아야 할 비박 의원들도 상임위 배정을 받기 위해 친박의 심기를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니 ‘웰빙 새누리’의 행태는 친박이나 비박이나 마찬가지다.
혁신비대위는 원 구성 협상이 타결되면 복당 문제를 본격 논의하기로 했으나 김 위원장은 손도 못 댈 만큼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총선 민의를 담아 내달 중순 발간 예정인 ‘국민 백서’를 놓고도 분란만 커질 우려가 있으니 내놓지 말자는 주장이 나온다.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당시 민주통합당이 한상진 서울대 교수에게 의뢰해 친노 패권주의 문제 등을 지적한 대선 평가 보고서를 만들고도 친노(친노무현)계 반발로 덮는 바람에 반성의 기회를 놓치고 국민 지지도 잃은 길로 가려는 듯하다. 이런 식이면 혁신비대위를 조기 해체하고 전당대회를 열어 친박 대표나 뽑으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김 위원장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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