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프랑스 국빈 방문에 동행했던 미래창조과학부 A 사무관이 산하 기관인 K-ICT(코리아 정보통신기술) 본투글로벌센터 직원에게 고교생 아들의 영어숙제를 시킨 일이 뒤늦게 드러났다. A 사무관은 본투글로벌센터가 주최한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 행사 지원을 위해 따라나섰다. 그런데도 파리 관광 차량 대여 비용과 가이드 비용까지 산하 기관에 부담시키는 갑질을 했다.
본투글로벌센터는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창조경제’ 일환으로 신생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돕기 위해 미래부가 만든 기관이다. 예산과 인사권을 쥔 공무원의 사적인 부탁을 산하 기관 직원이 거절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두 달 전 현대가(家)의 3세 사장이 운전기사에게 자신의 속옷과 양말, 운동복을 챙기도록 한 ‘갑질 매뉴얼’이 공개되면서 ‘금수저’가 천민자본주의를 만났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번엔 ‘금밥통’의 공무원이 정부 주도 자본주의를 만났을 때의 추악한 민낯을 보는 느낌이다.
이번 일을 무개념 공무원의 단순 일탈로만 볼 수 없다. 14조 원대 예산을 주무르는 미래부 공무원들이 세금을 쌈짓돈으로, 산하 기관을 밥으로 여기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미래부는 창조경제와 K-ICT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으로 매년 가파르게 예산을 늘려왔다. 지난해는 국감에서 연구개발(R&D) 예산 낭비가 가장 심한 부처로 산업부와 함께 꼽혔다. ‘미흡’ 판정을 받은 12건 사업에 총 2672억 원이라는 혈세가 낭비됐다.
‘다음 정권에서 없어질 가능성이 가장 큰 조직’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인지 기강 해이도 심각하다. 롯데홈쇼핑 재승인 과정에서 미래부 공무원들이 서류 조작을 눈감아줬다는 의혹이 최근 불거져 수사를 받는 중이다. 2014년 6월 최양희 장관이 취임한 후 금품·향응수수, 음주운전, 동료 폭행, 심지어 성 관련 사건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직원만 5급 사무관에서부터 서기관 부이사관까지 38명에 이른다. 최 장관은 창조경제 이전에 미래부 공무원들의 기강부터 바로잡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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