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일주일 전 네팔로 떠났다. 문 전 대표는 출발에 앞서 “나라에 어려운 일이 많아 마음이 편치 않다. 특전사 공수부대에서 군 복무할 때 했던 ‘천리행군’을 떠나는 심정이다”라고 자신의 트위터에 썼다. 문 전 대표는 네팔에서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한 자원봉사, 강연, 자매결연 일정 등을 소화하고 히말라야 트레킹도 한다고 한다.
내년 대선의 야권 유력 주자인 문 전 대표가 그저 봉사와 휴식을 위해 네팔로 가지는 않았을 터다. 대선까지는 아직 18개월이 남았고, 공식 대선 캠프를 꾸리지는 않았지만 이는 당연히 문 전 대표의 대선 행보로 봐야 한다. 다시 말하면 집권 플랜의 일환이다.
정치권에서는 흔히들 “집권을 하려면 시대정신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대선이 있는 해, 국민이 가장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선점해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승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이 더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영입해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대표 브랜드로 내세웠던 것이 좋은 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3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진보 진영이 (단일화 과정에서) 잠시 내려놓은 복지와 경제민주화라는 깃발을 낚아채는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진보가 제기한 시대정신을 받은 것이다”라고 했다.
문 전 대표뿐만 아니라 용꿈을 꾸는 여야 주자들 모두 내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일지, 그것을 어떻게 거머쥘 수 있을지 고심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정신이 전부일까. 진보의 시대정신을 탁월하게 낚아챘다는 박근혜 정부를 포함해 역대 정부를 돌아보면 ‘이제는 집권만이 지상(至上) 목표가 돼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시대정신은 부여잡았지만 집권 후 국정 운영의 청사진은 없었던(혹은 있었으나 너무 부실했던) 정권의 민낯을 보는 것 같다.
과거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한 의원은 “인수위 첫날 관료들이 우리 대선 공약 가운데 어떤 것은 되고, 어떤 것은 안 되는지 근거 자료를 첨부해 다 분류해 왔더라”라면서 “대부분 관료들한테 끌려다녔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이 의원은 “정권을 쥐었을 때 국정 분야별로 어떻게 이끌어 가겠다는 구체적인 안과 실행 계획을 세워 놓지 않는다면 그 정부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도 했다.
대선까지 남은 1년 6개월은 집권 플랜을 짜고 실행하는 데만도 부족한 시간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천신만고 끝에 정권을 쥔다 한들 국가의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 낼 것인지 해결책을 갖고 있지 않다면 5년 뒤 그 정부의 운명은 뻔하다. 대선 주자들 각자의 역량이 모자란다면 소속 정당이 총괄해서라도 집권 후 국정 운영 플랜을 지금부터라도 짜 놓기를 권한다. 대선 승리 후 대통령 취임까지 두 달여 동안만 행복한 정부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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