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어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의회의 본분은 거대경제세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경제세력을 견제하는 것”이라며 “(대기업 등) 거대경제세력이 나라 전체를 지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의회에서 다양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 전도사인 김 대표가 공정한 경제와 포용적 성장을 시대정신으로 제시한 것은 그제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재벌들의) 불법적, 편법적인 경영권 세습 방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연설과 맞닿는 측면이 있다. 지난해 4월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첫 대표연설에서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는 균형 발전’을 보수의 새로운 지평으로 제시했을 때 지도부가 일제히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 한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생길 정도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오늘 대표연설에서 시대적 과제로 ‘격차 해소’를 강조할 것으로 전해졌다. 헬조선과 금수저·흙수저론이 유행어가 될 만큼 소득, 노동시장, 부동산, 교육까지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전통적 우파의 의제인 성장과 좌파의 의제인 분배가 ‘양극화 해소’라는 의제로 통합 흡수되는 양상이다.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1 대 99’를 내건 미국 민주당 대선주자 버니 샌더스 돌풍, 영국의 국민투표를 하루 앞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논란에서도 확인됐듯이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세계화에 따른 양극화 문제의 해결책이 세계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험난한 경제 위기 앞에서 여야가 모처럼 경제인식을 공유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양극화 해소가 ‘파이를 어떻게 키울 것이냐’라는 문제의식보다는 ‘어떻게 나눠 먹을까’에서 출발하는 것이어서 근본적인 위기 해결책이라 할 수 없다. 대기업-중소기업, 가계-기업, 정규직-비정규직이란 이분법적 선악의 프레임으로 단순화하는 것도 도움이 안 된다. 구의역 사고에서도 드러났지만 공공과 민간, 원청(갑)과 하청(을) 간 격차 등 양극화의 내용을 들여다보고 불공정한 제도와 규칙을 바로잡는 것부터 정밀한 해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야당은 이참에 법인세 및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을 밀어붙일 태세지만 법인세가 세수 확대에 기여한다는 근거는 분명치 않다. 여야가 양극화 해소를 시대정신으로 내세운 만큼 공정시장의 문제에 집중해 정책 합의점을 찾는 등 협치의 새 모델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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