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보수논객 전원책 변호사의 정치 비판서를 읽으며 몇몇 대목에서 공감하는 내용이 적지 않았다. ‘온전한 선의를 가진 권력자는 없다’라는 첫 장부터 그랬다. 정치학을 전공하고 오랜 시간 정치부 기자를 한 필자에게 누군가가 “정치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선한 권력은 없다”고 답변할 작정이었던 터다.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없었다. 통치와 복종만이 있을 뿐이다. 정치는 그걸 민주주의로 각색한 거대한 사기극(詐欺劇)이다.” “만약 투표라는 형식으로 벌이는 선택의 결과를 ‘무지(無知)한 다수’가 좌우한다면 그런 민주주의를 찬양하다 못해 왜 우리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가?”
그는 시종 민주주의 자체에 대해 도발적인 의문을 던진다. 투표, 즉 다수결로 정책이나 인물을 결정하는 민주주의는 ‘가난한 다수’가 주도할 수밖에 없다고 일갈한 그는 “가장 저급하지만 효과적인 대중조작 수단은 대중을 두 편으로 갈라서 한 편에서 다른 편을 공격하게 하는 ‘편 가르기’다”고 썼다. 그가 ‘잡초’라고 표현한 대중은 안타깝게도 ‘우상’으로 명명된 소수 권력의 끊임없는 조작 대상이다. 왜? 늘 빈자(貧者)의 수가 부자의 수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견해가 다른 부분도 있지만 중우(衆愚)정치와 포퓰리즘에 대한 강력한 경고, 또 대중의 각성을 촉구하는 차원에서 쓴 걸로 보이는 책의 내용을 장황하게 소개한 데는 물론 이유가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브렉시트(Brexit)가 전 세계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불확실하다는 것만 확실하다고 할 정도로 미지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하고 있다.
그런데, 더 두려운 건 민주주의의 본산이자 선진국이라는 영국의 유권자 1741만여 명(51.9%)이 자신들도 어디로 갈지 모르는 길을 국민투표라는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택했다는 점이다.
세계화에 대한 저항, 양극화에 따른 분노와 불만의 표출, 신(新)고립주의, 국수주의, 이민과 난민에 대한 반감…. 브렉시트와 미국의 트럼프 열풍을 이해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내놓은 키워드들이다. 한마디로 “우아하게 남 일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나부터 살고 보자”는 생존 심리라는 것이다.
대체로 동의한다. 다만 브렉시트 확정 후 영국 내 구글에서 두 번째로 많이 검색된 문장이 ‘EU가 뭔가요?(What is the EU)’이고 ‘EU를 떠나면 무슨 일이 생기는가?’ 등의 질문도 검색 상위에 올랐다니 머리가 더 하얘진다.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진 그들은 ‘합리적 무지’(복잡한 공적 사안을 깊이 이해하려 하지 않는 상태), 즉 무지한 다수였을까. 분명한 건 그들 중 상당수가 스스로 감정적 선택이 아닌 이성적 선택이라고 믿고 찍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모르긴 몰라도 양극화 실태를 포함해 우리나라의 사정이 영국보다 심하면 심했지 좋을 것 같지 않다. 많은 전문가가 1997년 외환위기 사태 때는 외과적 수술로 그나마 위기를 넘길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핵심 장기들의 심각한 손상으로 위기 극복이 쉽지 않다고 우려하고 있다. 반세계화 보호무역주의로 대외 경제 환경은 더욱 나빠질 조짐이다. 어쩌면 작금의 경제 안보 위기는 대선이란 국민투표가 치러지는 2017년 정점에 다다를 수도 있다. 대선 승리를 위해 각 후보와 정당은 단순히 퍼주기 공약을 뛰어넘는, 나라의 명운이 걸린 양자택일 공약을 유권자들에게 던질 수도 있다. 한낱 잡초의 오만한 생각이겠으나 브렉시트 사태를 보며 시종 머리에서 맴돌고 있는 주제다. 어떤 상황이든 우리 국민은 역대 선거에서 발휘해온 ‘집단 지성’을 유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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