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추가경정예산 10조 원과 정책금융 및 공기업 투자금 10조 원 등 20조 원으로 경기를 부양한다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내놓았다. 사상 처음 2년 연속 추경이고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브렉시트(Brexit)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인데도 내용은 전혀 획기적이지 않은 것이 되레 놀랍다. 경제 활력 제고, 민생 안정, 구조 개혁이라는 정형화된 틀에 매번 내놓던 대책을 끼워 넣는 오랜 관행 그대로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성장률 목표치를 3.1%에서 2.8%로 내려 잡으면서도 “브렉시트 변수를 감안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제적 충격을 당장 수치화하기 어렵다는 이유지만 충격이 닥쳐도 대책이 없다는 고백으로 들린다. 추경 편성 과정에 브렉시트 상황을 고려했다지만 어느 정도 비중을 뒀는지도 설명하지 못했다. 청년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보호, 임금격차 완화 등 지금까지 백약이 무효였던 부문별 격차 축소 대책에 대한 반성이나 개선책도 없다. 브렉시트 대책으로 봐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24시간 경제금융 상황 점검이나 자유무역협정(FTA) 확대 등이 고작이다.
우리나라는 영국과 무역 및 금융 측면에서 연계가 약해 브렉시트의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기재부의 예측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왜 그제 “브렉시트로 경제의 대외 여건이 어느 때보다 심각해졌다”며 “여기서 잘 결정하지 못하면 경제는 큰 어려움을 맞을 것” “경기 흐름을 보완하고 기업 활동을 활성화하는 대책이 나오도록 철저하게 챙길 것”을 수석들에게 지시했는지 모르겠다. 보호무역주의 확산이나 환율전쟁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심대한 영향을 진지하게 분석했더라면 이번 경제정책방향 발표를 당초 예정된 날짜에 할 순 없었을 것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브렉시트를 양극화가 불을 댕긴 ‘현대판 농민봉기’로 분석했다. 극심한 빈부 격차에 14세기 영국 농민들은 곡괭이를 들고 일어섰지만 이번엔 대중이 표로 응징하는 것만 달라졌을 뿐이다. 이같은 세계적 흐름에 대한 분석도 없이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말만 늘어놓으니 답답하다. “양극화 해소에 대한 근본적 고민 없이 기존 대책을 일부 보완했다”는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의 비판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재정운영 효율성 점수는 61개국 중 38위, 정부지출의 낭비 정도는 140개국 가운데 70위에 불과하다. 경제가 지지부진한 이유는 정부가 재정운용을 효율적으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부터 인정해야 할 것이다. 여야정이 분야별로 양극화의 원인을 면밀히 분석한 뒤 공정한 경쟁과 정당한 과세가 이뤄지도록 제도와 정책을 원점에서 다시 설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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