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트럼프 현상’은 한국 정치에 무거운 숙제를 안겼다. 대중의 분노가 정치인들의 선동과 맞아떨어지면 국가가 정상 궤도를 이탈해 엉뚱한 방향으로 내달릴 수 있음이 확인됐다. 한국은 영국이나 미국 못지않게 양극화가 심한 나라다. 아차 하면 궤도를 이탈할 수 있는 최적 조건을 갖춘 셈이다.
한국 정치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유혹에서 벗어나 불신과 혐오를 해소하고 희생과 통합의 길을 제시할 수 있을까. 경제 양극화가 정치 양극화로 치닫지는 않을까.
동아일보는 1일 여야 3당 지도부에 브렉시트 이후 한국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물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국민의당 김성식 정책위의장은 서면 인터뷰에서 양극화의 심각성에 공감하면서도 해법을 두고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정 원내대표는 서면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는 (양극화의) 가장 큰 피해자가 청년층이라는 점에서 고령층이 기존 질서에 반대한 영국과 또 다르다”며 “청년층이 저항운동의 중심에 설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 정책위의장도 “정치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 키우기만 하면 역사의 수레바퀴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갈 수 있다”며 “청년층과 비정규직의 정치 세력화가 가속화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김 대표는 “정치적 양극화는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극단 대 극단으로 가면 화합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경제적 양극화가 정치적 양극화로 치달으면 ‘치유 불능의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그는 “4·13총선 결과(여소야대)가 (여권의) 공천 싸움 때문이라는데, 나는 아니라고 본다”며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를 외쳤는데 3년 만에 신뢰가 사라졌다. 결국 지난 3년 (박근혜 정부의) 정책에 대한 평가”라고 주장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치열한 정책 경쟁을 예고한 셈이다.
그렇다면 여야는 양극화 극복 방안이 있을까. 정 원내대표는 “해법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정치권은 포퓰리즘 공약의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진보 진영은 재벌 탓만, 보수 진영은 노조 탓만 하고 있다. 또 보수는 성장지상주의, 진보는 노동지상주의라는 낡은 이념의 포로가 돼 있다. 이 틀을 깨고 실사구시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원내대표가 제시한 해법은 ‘중향 평준화’다. 그는 “진보가 주장하는 상향 평준화는 경제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만큼 중향 평준화가 필요하다”며 “공무원연금 개혁도, 노동개혁 법안도 일종의 중향 평준화 노력”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양극화를 당장 해결할 방법은 없다”면서 “점점 커져 가는 격차를 일단 정지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가 등장한 이후 30년간 많은 나라가 감세(減稅)에 정책 방점을 두면서 소득 재분배 기능을 포기했다”며 “결국 세제 개편과 사회안전망 확충을 통해 국민이 최소한 생존의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내년 대선에서 양극화 극복 문제가 2012년 대선 때보다 더 중요해질 것”이라며 “무조건 분배만 이야기하면 신뢰가 가지 않는다. 성장과 분배를 함께 얘기해야 한다. 미국은 한때 상속세율이 90% 가까이 됐다. 사회를 진정시키려면 이런 파격적 수단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도 “구조 개혁과 사회 통합의 토대를 만들어 가는 차원에서 ‘중부담 중복지’의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야 한다”고 했다. 내년 대선에서 증세와 복지 수준을 둘러싼 논란이 한층 가열될 수 있다는 얘기다. 김 의장은 “기득권 커넥션을 타파하고 불평등을 줄여야 ‘희망의 대전환’을 이룰 수 있다”며 “20대 국회는 ‘문제 해결 정치’를 해야 한다는 국민의 열망을 담아 출범한 만큼 양보와 고통이 따르는 일까지 정직하게 책임지는 국회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원내대표의 ‘중향 평준화’, 김 대표의 소득 재분배를 위한 ‘파격적 수단’, 김 의장의 ‘기득권 타파와 불평등 해소’를 아우를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것이 20대 국회의 과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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