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나랏돈 의존증’]
朴정부 상반기 재정집행률 59.5%… 올해도 하반기 예산 12조 당겨 써
하반기 쓸돈 없어 추경편성 ‘땜질’ 나랏빚 늘어 국가채무비율 40%대
경기회복 불쏘시개 필요하지만 민간투자 못 살리면 ‘밑빠진 독’
《 정부는 올 상반기(1∼6월)에 하반기(7∼12월) 예산 12조5000억 원을 끌어 썼다. 나랏돈을 불쏘시개 삼아 경기를 살리기 위한 조치였다. 문제는 정부가 상반기에 예산을 미리 당겨 집행하면 하반기에 쓸 예산이 그만큼 모자란다는 점이다. ‘재정 절벽’이 우려되자 정부는 지난달 28일 10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등 20조 원의 재정 보강 대책을 꺼냈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지만 ‘상반기 재정 조기 집행―하반기 재정 절벽 우려―추경 편성’이 해마다 반복되면서 한국 경제의 재정 의존도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경제 체질의 근본적인 개선 없이 ‘윗돌을 빼 아랫돌을 괴는’ 식의 ‘땜질식 처방’으로 위기가 만성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 ‘재정 악순환’ 고착화
재정 조기 집행과 추경이 반복되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처음 40%대를 넘어섰다. 추경 편성 과정에서 국채를 발행하면서 나랏빚 증가 속도도 가팔라졌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정부가 과감하게 재정 정책을 동원해 위기를 극복했던 ‘재정 카드’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상반기 재정 조기 집행 카드’는 하반기에 쓰지 못해 남는 예산을 없애고 경기 부양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도입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 경기 활성화 정책으로 사용됐고 박근혜 정부도 반복해 활용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4년간 상반기 평균 재정 집행률은 59.5%에 이른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상반기에 재정을 끌어 쓰다 보니 하반기에 쓸 돈이 없는 재정 절벽에 직면하고 추경을 편성해 다시 재정을 보강하는 식의 ‘재정 집행의 악순환’이 벌어진다.
박근혜 정부는 취임 초인 2013년 17조3000억 원의 추경을 편성한 데 이어 2014년을 제외하고 매년 추경을 편성했다. 올해 추경은 초과 세수를 활용해 국채 발행을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하반기 세수 전망이 기대치를 밑돌면 ‘국채 발행 카드’가 다시 나올 수도 있다. 추경으로 하반기 재정 보강을 하더라도 내년도 상반기에 또다시 재정 절벽에 부닥치게 되고, 이를 막기 위해 상반기 재정 조기 집행을 하면 또다시 추경 편성의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백웅기 상명대 금융경제학과 교수는 “상반기에 재정 조기 집행을 하지 않으면 1년 전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긴축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 가시적 성과 없는 구조개혁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 조기 집행, 정책금융 확대, 추경 편성 등 각종 재정 보강 대책을 동원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대외 변동성이 커지고 세계 각국이 돈을 풀어 경제를 살리는 ‘양적완화’에 나서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만 뒷짐을 지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 경제의 또 다른 한축인 민간 부문은 소비와 투자가 얼어붙어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것도 정부의 고민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것을 막고 경기 회복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선 과감한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정을 통한 성장은 경제 체질 개선이 없는 일시적 성장에 불과해 한계가 있다. 재정을 쏟아 부어 끌어올린 성장률을 다음 해에도 유지하려면 그보다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성장잠재력이 3%대인데 일시적으로 2%대로 떨어졌다면 추경 등 재정 보강을 통해 성장률을 일시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며 “하지만 성장잠재력 자체가 2%대 중반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3%대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추경을 하면 다음 해에도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추가로 재정을 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기적 재정 정책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더라도 민간 부문에 활력을 불어넣는 구조개혁이 병행돼야 지나친 ‘재정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정부가 많은 재정 투입에도 불구하고 조선 철강 등 제조업의 경제성장 기여도는 갈수록 줄어들고 산업공동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기업의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고 획기적인 투자 유인책을 제시하지 않고선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경제 체질을 바꾸는 구조개혁과 산업경쟁력을 회복하는 기업 구조조정이 시급하지만 공공, 노동, 금융, 교육 등 4대 개혁은 임금피크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공공 부문 개혁을 제외하곤 가시적인 성과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권 말에 접어들면서 개혁의 추진동력이 더 떨어질 수 있다. 기업 구조조정 역시 국책은행 자본 확충 방안 결정에만 43일을 허비할 정도로 추진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정부가 최근 기존의 4대 개혁에 산업개혁을 더한 ‘4+1 개혁안’을 제시했지만 아직까지 ‘구호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이 적극적으로 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민간 부문이 살아난다면 정부의 역할과 재정 의존도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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