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法, 너무 큰 그물… 구멍은 숭숭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6일 03시 00분


[김영란法 필요하지만 이대론 안된다]
○ 400만명 식사-경조사비 규제… ‘도덕 사찰’ 악용 소지
○ 15개 금지-7개 허용행위 기준 모호… 헷갈려 못지킬판

2016년 10월. 제약회사 주최로 열린 학술 포럼 만찬 테이블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의사 A 씨와 삼성서울병원 의사 B 씨가 나란히 앉는다. B 씨에게는 5만 원짜리 스테이크 정식이 제공됐지만 A 씨에게는 2만9000원 상당의 비빔밥 정식이 나왔다. 차별에 기분이 상한 A 씨가 주최 측에 항의했지만 “법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벌어질 수 있는 가상의 사례다. 세브란스병원처럼 사립학교가 운영하는 병원은 규제를 받지만 삼성서울병원처럼 학교가 아닌 공익재단이 운영하는 병원은 이 법에서 자유롭다. 똑같은 일을 하는 의사가 어느 병원 소속이냐에 따라 이처럼 어이없는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법 적용 대상과 기준이 모호한 탓이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제안하고 지난해 3월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이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이 끝나는 9월 28일부터 시행된다. 이제 공무원과 언론사 종사자, 교사 및 그들의 가족 등 400여만 명은 교제를 위한 식사, 선물, 경조사비 등의 영역까지 도덕과 상식이 아니라 법률로 규제받는다. 대가성이 없어도 직무와 관련된 사람에게서 1회 3만 원 초과의 식사 대접, 5만 원 초과 선물, 10만 원 초과 경조사비를 받을 경우 처벌하는 김영란법은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법언과 달리 ‘도덕의 최대치’까지 규율하는 셈이다.

부정부패 일소와 청렴사회 구현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며, 김영란법이 당초 취지대로라면 이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꼭 필요한 법이라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다. 문제는 이 법이 국회 입법 과정에서 변질됐다는 점이다. 19대 의원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대목을 삭제하고, 그 대신 대상을 유례없이 포괄적으로 확대해 버렸다. 그 결과 적용 대상이 지나치게 광범위해 과잉 입법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대로라면 수사기관의 자의적인 법 집행이 가능해지고, 표적·과잉·봐주기 수사 논란이 제기돼 국가 형벌권에 대한 불복 기류가 확산될 수 있다고 본다. 음해성 투서가 난무하고, 정권의 상시 사찰이 합법의 외피를 쓴 채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당장 김영란법이 열거한 금품 수수 금지 예외 사유 중 ‘원활한 직무 수행, 사교, 의례, 부조의 목적, 장기적 지속적인 친분 관계, 사회 상규’ 등이 무엇인지 논란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한 법원 판례가 쌓이기 전까지 국민은 불안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홍정수 기자

#김영란법#법조계#부정 청탁#금품 수수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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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4

추천 많은 댓글

  • 2016-07-06 03:53:46

    시행이 가까이 오니 기자들이 X줄 타는 모양이다. 구멍이 숭숭 나있으면 일단 먼저 시행하면서 빠져나가는 경우를 보완해서 그 범위를 전체 국민으로 확장하면 될 일. 1회 3만 원 식사 대접, 5만 원 선물, 10만 원 경조사비.. 이 정도면 타인간의 대접에 문제 없다.

  • 2016-07-06 05:38:02

    청렴하고 공정한 공직자라면 3만원짜리 음식도 과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김영란 법을 탓하는 사람들은 청렴하고 공정한 것이 무서운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 2016-07-06 07:13:13

    의사도 자기돈 주고 먹으면 되지 왜 얻어 먹냐.. 이상하게 이런식으로 비유하면서 김영란법을 짓밟아대니 이해가 안된다. 공무원이나 의사들이 왜 자기돈으로 안먹고 얻어 먹으면서 법이 위헌소지가 있니 없니 지r을 떠든지 모르겠다.. 언론이 자꾸 여론을 호도한다 자기들 밥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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