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2012년 8월 16일 입법예고한 이후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3월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아직도 당시 상황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음에도 여론에 밀려 통과시켰다는 자괴감이 든다”고 얘기하는 의원들이 많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뒤에도 김영란법은 당초 정부 원안과는 동떨어진 ‘누더기법’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애초 김영란법 입법 논의의 시작은 2011년 이른바 ‘벤츠 여검사’ 사건이 출발점이었다. 금품 수수 사실은 인정됐지만 직무 관련성이 입증되지 않아 해당 여검사가 무죄 판결을 받자 본격적으로 입법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공직자가 금품을 수수하면 처벌하자는 취지였다.
2012년 8월 국민권익위원회가 김영란법을 입법 예고한 지 약 1년 뒤인 2013년 8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하지만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는 “적용 대상이 너무 넓은 데다 위헌 소지도 있다”는 원론적인 논의만 반복됐다. 그러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갑작스레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3년 가까이 국회에 계류돼 있었지만 실상은 충분히 논의할 시간이 부족했다.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에서는 위원들 간의 격론이 오가기도 했다. 2014년 5월 27일 법안소위에서는 일부 위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서둘러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김종훈 위원(새누리당)=“어느 정도 완성도가 있어야 하는데 이게 뭐….”
▷김용태 소위원장(새누리당)=“지금 시간이 없지.”
▷김종훈 위원=“시간이 왜 없어요. 오늘만 날인가요?”
▷김용태 소위원장=“우리 임기가 오늘 마지막이에요. 법안소위 임기가.”
▷김종훈 위원=“대한민국 국회는 영원히 있습니다.”
▷김용태 소위원장=“아니 우리 법안소위 임기는 마지막이라고요.”
▷김종훈 위원=“우리가 안 하면 다음에 하면 되지요.”
▷박대동 위원(새누리당)=“이 법이 굉장히 중요하고 국민들한테 주는 영향도 크고. 서둘러서 졸속 입법이 되면 법사위에 넘겨줬을 때 우리한테 무책임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법의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우려하던 정무위는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방치하고 엉뚱하게 이 법의 핵심중 하나였던 이해충돌 방지 부분을 삭제했다. 이해충돌 방지는 국회의원을 포함한 공직자의 4촌 이내 가족이 본인 또는 가족과 이해관계가 있는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애초 원안은 △금품 수수 금지 △부정청탁 금지 △이해충돌 방지 등 세 부분이 큰 골자였다. ‘반쪽’짜리가 됐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여기에 부정청탁 금지 대상에서도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는 처벌 대상에서 뺐다. 국회 관계자는 “국회의원만 제외한 게 아니라 선출직 공직자 약 6000명이 제외 대상”이라며 “선의의 민원 제기자, 청탁자가 부탁할 수 있는 창구 자체가 막힐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 대신 당시 정무위에서는 여론에 떠밀려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을 대폭 늘리는 데 급급했다. 결국 김영란법이 통과됐던 지난해 본회의 당일에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법사위원들의 한숨 소리가 이어졌다.
▷홍일표 위원(새누리당)=“나도 반성문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김영란법을) 표류시킨다고 비판할 게 두려워 제대로 절차를 못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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