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郡)의회 의원들이 의장 자리를 놓고 담합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은 조직폭력배처럼 담합 각서에 혈서 지장까지 찍어 맹세했다.
전국 지방의회에서 후반기 의장단 구성을 둘러싼 담합과 불복 등 파행이 이어지는 가운데 경남 의령군의회에서는 2년 전 담합을 통해 작성한 ‘피 각서’가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경찰과 선거관리위원회는 즉각 진상 파악에 나섰다.
6일 의령군의회에 따르면 새누리당과 무소속이 각각 5명씩인 의령군의회는 4일 제222회 임시회에서 제7대 후반기 의장단 선거를 진행해 손호현 의원(55·새누리당)을 새 의장으로 뽑고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는 등 집행부 구성을 마쳤다.
경남 의령군 의회 무소속 의원들이 2014년 7월 작성한 ‘혈서 지장’ 각서. “강력한 다짐을 하는 차원이었다”는 설명이지만 공공연한 ‘자리 나눠먹기’의 실체가 확인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남일보 제공
그러나 의장 선거에 나섰다가 낙선한 손태영 의원(56·무소속)이 폭탄발언과 함께 ‘각서’를 공개했다. 그는 “2년 전 전반기 의장단 선출 과정에서 본인이 의장을 양보하고 상임위원장 등을 하지 않는 대신 후반기 의장을 맡기로 약속하면서 각서까지 썼으나 동료 의원 한 명이 이를 어겼다”고 주장했다.
2014년 7월 2일 작성된 ‘각서합니다’라는 제목의 문서에는 의원들이 자체적으로 선정한 전반기 의장단과 후반기 의장단 이름이 적혀 있다. 그 아래에는 ‘위 약속을 위반할 경우 위반 의원이 각각 1억 원씩 후반기 의장에게 지급하고 한 명이 위반하면 약속의 배액을 보상할 것을 혈서 지장으로 각서함’이라고 썼다.
전반기 의장을 지낸 오용 의원(60)과 강영원(58), 전병원(49), 서철진(2015년 의원직 상실), 손태영, 김규찬 의원(58) 등 6명이 차례로 인적사항을 적고 지장을 찍었다. 특히 후반기 의장을 ‘예약’했던 손태영 의원이 수지침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찔러 나온 피를 인주에 섞자 모두 ‘혈서 지장’을 찍었다.
전반기에 보직이 없었던 손태영 의원은 이번 의장 선거에서 5표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4표에 그쳐 손호현 의원에게 1표 차로 졌다. 10명 가운데 한 명은 어느 후보에게도 기표하지 않고 기권한 것이다. 5 대 5가 되더라도 손호현 의원보다 한 살 많은 연장자여서 의장이 될 수 있었던 손태영 의원의 계산은 빗나갔다.
그는 “2년 전 강력한 다짐을 하는 차원에서 피 각서를 작성했던 것”이라며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 사태 흐름을 지켜본 뒤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기권한 의원을 구체적으로 거명하지는 않았으나 지역에서는 특정 의원 이름이 나돌고 있다. 해당 의원은 “더 이상 구태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호현 신임 의장은 “인구 2만8000여 명의 작은 지역에서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 참담하다. 잘 수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의령경찰서는 “정확한 경위를 파악한 뒤 위법성 여부를 따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남도 선거관리위원회는 “의장단 선거는 공직선거법의 바깥 영역”이라며 “돈이 오갔다면 뇌물죄로 볼 수 있으나 약속 또는 의사표시만으로는 정치자금법(32조)을 적용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경남에서는 사천시의회가 의장단 선출 과정에서 내부 갈등으로 2차 투표가 중단됐다. 김해시의회도 의장선거 결과와 관련해 새누리당 일부 의원끼리 욕설을 주고받는 험악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거창군의회는 11명의 의원 중 5명이 의장, 3명이 부의장 후보로 등록하는 과열 양상으로 투표를 13일로 연기하는 등 곳곳에서 파행이 빚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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