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업에 청년고용 강제할당… 적자 나도 인건비 늘려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8일 03시 00분


[기업 옥죄는 20대 국회]<上> ‘경제 역주행’ 주요 법안

임직원이 대략 10만 명인 삼성전자는 매년 3000∼5000명씩, 약 6만7000명이 근무하는 현대자동차는 매년 2000∼3400명을 ‘청년’으로만 선발해야 한다면 어떨까.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솔깃하게 들릴 만한 얘기지만 경영실적에 상관없이 무조건 정원의 5%라는 할당량을 지켜야 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글로벌 경영환경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몸집을 줄이려는 기업의 경우 정원 5%의 청년을 신규 고용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 4명(박남춘·노웅래·박주선·김삼화)은 이런 내용을 담은 ‘청년고용 촉진 특별법’ 개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했다. 공공기관 및 지방공기업의 경우 청년 미취업자 고용 비율을 매년 정원의 3% 이상에서 5% 이상으로 올리고 민간 기업에도 적용(법안에 따라 적게는 3%, 많게는 5%)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 불황에 정치리스크까지 지게 된 재계

20대 국회가 개원 한 달여 만에 우후죽순 격으로 쏟아낸 경제민주화 법안들 중 상당수는 대기업의 영향력을 축소하거나 기업의 물적, 인적 부담을 키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야당은 경제민주화 법안을 집중적으로 발의하면서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는 등 긍정적 요인이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 실업 △내수 위축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라는 복병을 만나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에서 재계가 정치리스크까지 떠안게 되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대기업 관계자들은 “발의된 법안의 입법 여부에 따라 경영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할 정도로 파괴력이 크다”며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재계가 가장 걱정하고 있는 법안 중 하나는 법인세법 개정안이다. 더민주당의 윤호중, 박주민 의원은 약속이나 한 듯 나란히 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22%인 법인세를 과세표준이 500억 원 이상인 기업의 경우 25%로 올리겠다는 게 핵심이다. 김동철 국민의당 의원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과세표준 200억 원 이상 기업에 법인세 25%를 물리겠다고 발의했다.

사업주가 매년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공시하고 근로시간이 기준을 초과하는 사업주에게 부담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고용정책 기본법 개정안, 직원의 배우자, 자녀, 형제자매가 군대에 갈 때 입영 동행 휴가를 유급으로 보내주는 병역법 개정안 등은 19대 때 폐기됐다가 다시 부활했다. 국내 한 대기업 관계자는 “여소야대 국회인 만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재계에 부담이 되는 법안이 많이 올라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 기업 지배구조까지 조준

박용진, 박영선 더민주당 의원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내 공익법인이 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경우(100% 보유한 경우 제외) 의결권 행사를 금지한다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냈다. 자산 10조 원 이상의 국내 대기업집단 28곳 중 삼성그룹, 현대자동차그룹, LG그룹 등 20곳이 40개 공익법인을 통해 다수의 계열사 주식을 갖고 있다. 사실상 국내 모든 주요 그룹의 경영권에 상당한 파장을 미칠 수 있는 법인 셈이다. 박용진 의원실은 “재벌기업 공익법인들이 공익사업보다는 다른 목적으로 이를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전부터 있었다”고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과잉·중복 규제는 공익재단을 통한 대기업들의 사회사업 확대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더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점이다.

국민의당은 7일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근절 대책으로 규제 대상 대기업 오너 일가 지분 요건을 현행 상장사 30% 이상, 비상장사 20%에서 모두 20%로 단일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 방안이 현실화하면 많은 그룹이 상당수의 지분을 매각해야 하기 때문에 재무적으로 큰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민주당은 상법 개정안에 이어 대기업들이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법안이 발의돼 통과될 경우 계열사 지분 정리가 불가피해 재계에서는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권석창 새누리당 의원이 총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결함 신차의 교환·환불 의무화’ 법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소비자들을 위한 법을 만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고가의 승용차에 대해 교환·환불을 의무화하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와 맞지 않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김창덕 기자
#20대 국회#기업#청년 할당제#취업#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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