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곳곳에 갈등과 분열이 넘쳐 나고 있다. 최근 복합적이고 다층적으로 불거지는 사회 갈등은 누가 어떻게 조정해서 풀어야 할까.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4일 ‘사회 갈등과 언론보도’를 주제로 토론했다. 》
―우리 사회의 갈등은 늘 ‘현재 진행형’입니다. 최근의 영남권 신공항 논란과 서울 지하철 스크린도어 기사 사망 사건 등을 볼 때 그 안에는 지역 간 갈등 외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세대 간, 소득 계층 간의 갈등 등 여러 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사회적 공기로서 언론이 갈등 해소에 적절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동아일보의 최근 보도를 중심으로 논의해 보겠습니다. 이진강 위원장=어떤 일이나 사정이 복잡하게 뒤얽혀 화합하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게 갈등의 사전적 의미입니다. 사회적 갈등이 악이고, 갈등이 없는 게 선이라고 봐야 하는지, 갈등 자체를 어떻게 정의하고 풀어 나가야 할지 궁금합니다. 우선 동아일보에서는 사회적 갈등을 어떻게 보고 다루고 있는지 말씀해 주시죠. 박성원 위원=영남권 신공항을 둘러싼 갈등에서 정치권이 되레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확대 증폭시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여소야대라는 새 정치 지형에서 이런 갈등이 지속되면 내년 대선까지 혼탁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해법을 찾는 것이 하나의 원칙이었습니다. 객관적인 사실을 파악하고, 전문가를 통한 해법을 찾는 데 보도의 초점을 두려고 했습니다만, 부족한 부분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조화순 위원=공동체 안에서 갈등을 피하긴 어렵습니다. 갈등을 넘어 어떤 공동체를 만들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갈등을 적극적으로 해소하고 공존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용묵 위원=갈등은 발전의 첫 단추가 될 수 있습니다. 기업과 소비자의 분쟁을 오래 다루어 왔는데, 양측의 이해관계 속에서 충돌은 생길 수밖에 없지만 원인을 잘 분석하면 개선 방안이 나옵니다. 갈등 없이 만들어지는 변화나 개혁도 없습니다. 그런 제도 개선이 언론과 지도자들의 몫이라고 봅니다.
강무성 위원=갈등이라는 요소를 한쪽에서 바라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원인 쪽에서 바라볼 수도 있고, 결과 쪽에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갈등 자체는 악이 될 수 없고, 그것을 푸는 과정이 악이 될 수 있습니다. ‘같이 지혜를 모아 보자’가 아니라 ‘내 말이 맞다’라는 것이 더 힘을 얻는 상황인 거죠. 조 위원=정치권이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 동아일보 6월 15일자를 보면 야당의 어떤 의원은 신공항 유치에 실패하면 불복종 운동까지 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문제를 더 심화시키는 거죠.
이 위원장=정치권의 잘못이 계속 얘기되고 있는데 언론의 역할이나 시각은요?
박 위원=정치권이 갈등을 풀려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노동 개혁 법안만 보더라도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어떤 것이 다음 선거에 유리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합니다. 국민의 인식과 정치권 인식이 다르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 주면서 공론을 형성하고, 정치권의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 언론의 숙제라고 봅니다. 안민호 위원=6월 21일 김해공항 확장안 발표 후, 동아일보는 왜 이런 문제가 생겼고, 이번 결정이 어떤 의미인지 많은 지면을 통해 전했습니다. ‘갈등 시스템 뜯어고치자’라는 기사(6월 23일자)도 문제를 정확히 바라봤다고 생각합니다. ‘영남권 신공항 어디서부터 잘못됐나’라는 칼럼(6월 17일자·천영우)도 있었습니다. 김해공항을 확장할 수 없다는 전제 조건이 잘못됐다는 지적인데, 좀 더 일찍 이 문제를 제기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느 한쪽이 잘못됐다면 객관적 근거를 통해, 논리적으로 지적했어야 합니다. ‘이렇게 보도하면 편하고 안전하니까’ 하는 생각에 어정쩡한 입장에 머물러 있었던 것 아닌가요?
이 위원장=구체적인 보도 내용을 더 들여다보죠.
신 위원=갈등이 생긴 후 해결 방안을 찾는 것은 소극적인 대응입니다. 갈등을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동아일보가 차별화하려면 갈등의 예방적 취재를 보완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통과 화합을 위해 언론이 마중물 역할을 해 줘야 하는데, 그 역할을 하려면 사안의 본질과 정책의 가치, 계층적 실리 등을 국민이 판단하기 좋게 해 줘야 하지 않을까요. 프랑스에서 공항 고속철을 뚫는 데 국가공공토론위원회(CNDP)라는 독립기구를 만들어 국책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기사(6월 24일자)를 소개했는데, 이런 기사가 많아야 합니다.
조 위원=‘브렉시트 이후 한국의 길’과 관련해 각당 지도부의 의견을 물은 기사가 있어요(7월 2일자). 양극화 해법을 찾을 때, 언론과 정치권은 제도론적인 해법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회의 갈등 해소 방안은 그 사회 내의 ‘norm(기준 또는 규칙)’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합니다. 각성이 없이는 제도만으로 해결이 안 된다고 보거든요. 브렉시트로 드러난 영국의 갈등을 ‘강 건너 교훈’처럼 편하게 보지 말고 국내 문제에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강 위원=지도자에 대한 개념도 바뀔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주장이 강하고 힘이 있는 분들이 해야 일이 잘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이 과거에 있었다면, 지금은 시대가 바뀌지 않았나요. 앞서 언급된 프랑스의 CNDP는 부러운 제도입니다. 객관적인 조직을 구성하고, 이해관계를 떠난 논의를 통해 결과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신선합니다.
안 위원=갈등 문제를 다룰 때는 욕을 먹더라도 과감한 의견 제시가 필요합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의견을 언론이 내 주어야 합니다. 오피니언 지면을 강화해 공론의 장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 위원장=갈등은 스스로가 조정하고 해소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길을 알려 주는 것이 언론의 역할입니다. 갈등은 사회를 더 활력 있게 만들고 대화와 타협의 미덕으로 이끄는 힘도 가지고 있습니다. 또 갈등은 뿌리째 뽑아 버려야 하는 악이 아니라 잘 다뤄 나가야 할 생산요소이자 활력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의 원인 분석을 잘해서 서로를 인정하게 만들고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언론의 역할입니다. 박 위원=같은 유형의 사고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데 언론이 더 파고들어서, 정치적 이슈가 되기 전에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아픈 대목입니다. 언론 스스로가 전문가 이상의 지식을 갖추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전문성을 공론의 영역에 끌어들여 여론을 설득하는 역할에 더욱 주력하겠습니다.
이 위원장=시의적절한 주제였습니다. 사회적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소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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