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입법 당시 미처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 법을 처음 제안했고, 법 시행 후 관련 업무를 담당할 국민권익위원회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김영란법이 직접 적용되는 대상은 공직자 교원 언론인 등 235만 명과 그 배우자 등을 합치면 4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 법은 부정 청탁을 한 사람과 받은 사람, 금품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을 모두 처벌하도록 하고 있어 실제 적용 대상은 이보다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공무원을 접촉해야 하는 민간 기업 직원, 학교나 유치원 교사 등을 만나야 하는 학부모 등도 적용 대상이다.
○ 각종 편법 불 보듯… 로펌, “새로운 시장”
법 시행이 임박하면서 현장에서는 벌써 법의 사각지대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1인당 한도인 3만 원을 초과해 식사를 한 후 계산할 때는 참석 인원이 실제보다 많은 것처럼 꾸며 1인당 식사 비용을 줄이는 방법, 저녁 식사 때는 밥값보다 술값이 더 나온다는 것을 고려해 와인이나 양주 등 술을 미리 구입해 가져가 비용을 줄인다는 등의 ‘꼼수’가 공공연히 회자된다. 법인카드가 아닌 개인카드로 결제한 뒤 차후 회사에 증빙 서류를 제출하고 개인 인센티브 형식으로 돌려받는 편법도 얘기된다.
또한 개인의 일상을 촘촘히 규제하면서도 법의 그물망 곳곳에 구멍이 있다 보니 “뭐는 걸리고, 뭐는 안 걸리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다.
혼란스러운 틈을 이용해 벌써부터 일부 법무법인은 ‘김영란법 자문’이라는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대형 로펌마다 공정거래법 전문가, 노동법 전문가 등을 동원해 자문단을 꾸려 기업들을 대상으로 홍보까지 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김영란법이 당초 취지대로 시행되기 위해선 법 시행 후 횡행할 수 있는 편법과 탈법을 막거나 잡아낼 장치가 준비되어 있는지를 미리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권익위 담당 부서 직원 10명도 안 돼
김영란법은 ‘부정 청탁’과 ‘금품 수수’라는 두 가지 부패 유형을 금지한다. 누구든지 직무를 수행하는 공직자 등에게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한 부정 청탁을 할 수 없다. 부정 청탁을 받은 사람은 소속 기관장에게 신고해야 하고, 소속 기관장은 신고 내용이 부정 청탁에 해당하는지를 확인할 의무가 있다.
위반 행위를 발견한 사람은 위반 행위자의 소속 기관, 권익위, 감사원, 검찰, 경찰 등에 신고할 수 있다. 공익 신고자 보호가 되는 권익위에 신고가 몰릴 것으로 보인다. 권익위는 신고가 들어오면 신고자를 대상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해 소속 기관에 과태료 부과를 요청하도록 하거나,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할 수 있다. 검찰과 경찰도 신고 처리 결과를 반드시 신고자에게 알려줘야 한다.
권익위는 관련 업무를 담당할 청탁금지제도과를 법 시행에 맞춰 신설할 예정이다. 하지만 인원은 8, 9명에 불과하고 결국 나머지 인력도 대부분 김영란법 관련 업무 처리에 동원될 처지다. 권익위는 혼란을 막기 위해 올해 3월부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예상되는 사례별 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권익위는 이미 하루 평균 100건 이상 밀려드는 유권해석 요청 문의에 대한 대응에도 허덕이는 상태다. 피신고자 조사권이나 계좌추적권조차 없어 위반 사실을 조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권익위가 현재의 조직 형태와 역량으로 과연 법 시행 후 접수할 각종 문의와 신고를 제대로 소화해서 사실관계 확인과 처분, 공평한 해석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또 권익위는 당초 공직자로 한정됐던 법 적용 대상이 국회 입법 과정에서 사립학교 교사, 언론사 재직자 등으로 대폭 확대됐는데도 법안 통과 자체에만 매달렸다. 여기엔 김영란법 시행으로 권익위의 조직 및 권한이 확대될 수 있다는 기대가 깔려 있었다는 시각도 있다. 권익위 관계자는 “하루 몇 건 조사를 나가야 할지, 몇 천 건이나 유권해석을 해야 할지 예측이 어렵다”며 “시행 초기에는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김창덕 기자·강주헌 인턴기자 한양대 행정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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