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KBS 김시곤 폭로로 본 권력과 언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3일 03시 00분


부시, 기사 게재 보류 요청하러 NYT 발행인 설즈버거 만났으나,
‘고려해보겠다’고 말한 설즈버거, 열흘 뒤 기사 게재
권력이 기사협조 요청할 때 무슨 얘기인지는 들어보되
언론 스스로 결정해 판단해야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회고록 ‘결정의 순간’에는 권력과 언론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부시 대통령은 2005년 12월 뉴욕타임스(NYT) 발행인인 아서 설즈버거 2세와 편집국장 빌 켈러를 백악관으로 불러 테러리스트 감시 프로그램에 대한 기사 게재 보류를 요청했다.

백악관은 NYT의 기사 게재를 이미 한 번 막은 적이 있다. 멀리 1971년 국방부의 베트남전 기밀문서 ‘펜타곤 페이퍼’ 얘기가 아니다. 부시 대통령이 게재 보류를 요청한 바로 그 기사를 놓고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이클 헤이든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나서 NYT를 설득해 한 번 보류시켰다. NYT가 다시 기사를 게재하려 하자 이번에는 부시 대통령이 설즈버거 발행인을 상대로 직접 설득에 나선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NYT가 테러리스트 감시 프로그램에 대한 기사를 게재하면 적들이 안보와 관련한 중요한 사실을 알아낼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이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설즈버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기사 게재를 보류해 달라고 촉구했고 설즈버거는 내 요청을 고려해 보겠다고 말했다”고 썼다. 설즈버거와 켈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NYT는 열흘 뒤 기사를 게재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시곤 KBS 보도국장 사이의 전화 통화 내용이 얼마 전 공개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전 수석의 전화를 받고 김 전 국장은 밤 9시 뉴스에 내보낸 기사 한 꼭지를 밤 11시 뉴스에서 뺐다. 기사는 ‘세월호 침몰 둘째 날 해군의 재투입이 해경 때문에 황금시간을 놓쳤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NYT의 설즈버거는 자기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국가 안보와 직결된 기사의 게재를 보류해 달라고 촉구하던 부시 대통령의 요청을 거부했다. KBS는 그러지 못했다. NYT는 백악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지만 KBS는 청와대의 눈치를 봐야 하지 않느냐는 반박이 나올 만하다. 맞다. 그러나 다른 측면도 있다.

김 전 국장이 이 전 수석과의 전화 통화 중 변명하듯 말한 것처럼 KBS 조직 내부의 성격상 정말 중요한 기사였으면 국장이라도 함부로 뺄 수 없다. KBS는 노조의 감시가 강한 조직이다. 이 전 수석의 요구는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기사를, 그것도 이미 한 차례 보도가 된 기사를 빼달라는 것이었으니까 김 전 국장이 티 안 나게 빼줄 수 있었다. 둘이 짜고 몰래한 좀도둑 짓에 언론의 자유라는 거창한 자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우습다.

KBS는 일방적으로 정권에 당하는 조직이라고 여기면 오산이다. 다만 KBS와 정권의 관계가 어떨 때는 가학적이고 어떨 때는 피학적일 뿐이다. KBS는 문창극 보도에서는 악마의 편집을 하며 가학적인 입장에 섰다.

이 전 수석과 김 전 국장의 통화를 듣고 있노라면 가학-피학 관계가 교차되는 두 남자를 보는 묘한 느낌이 든다. 이 전 수석은 화가 난 듯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계속 봐달라는 식으로 읍소를 하고, 김 전 국장은 수세적인 것 같으면서도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보도지침이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일방통행식 관계는 없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밑에서 공보국장을 지낸 앨러스테어 캠벨은 ‘블레어 시대(The Blair Years)’란 책을 냈다. 이 책은 캠벨이 평소 쓴 일기를 발췌해 엮은 것이라 공보국장의 일상이 잘 나타나 있다. 일기에는 캠벨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사나 방송사의 책임자들과 통화하면서 언론 보도에 대응하는 얘기가 나온다. 우리나라의 홍보수석이란 자리도 그런 일을 하는 자리다.

부시처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기사에 대한 협조를 당부하는 것은 아주 예외적이다. 그 예외적인 순간에 설즈버거는 대통령의 요청에 ‘고려해 보겠다’고 답했다. 예의상 한 말이든 진짜 고려해 보겠다고 한 말이든 큰 차이는 없다. 권력의 요청이 애초 터무니없다고 여기면 예의상으로 고려해 보겠다고 말하는 것이고, 일리가 있다고 여기면 그것까지 고려해서 판단하는 것이다. 이 ‘고려해 보겠다’는 말 속에 가학-피학 관계를 넘어선 권력과 언론의 정상적 관계가 들어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결정의 순간#백악관#기사 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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