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활의 시장과 자유]직장인 절반이 소득세 안 내는 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3일 03시 00분


권순활 논설위원
권순활 논설위원
그제 동아일보는 근로소득자 면세자 급증과 정치권의 소득세 감면 경쟁의 폐해를 분석한 기사를 1면과 3면에 실었다. 신문의 1, 3면은 그날의 메인 이슈를 싣는 지면이다. 이 사안은 충분히 그렇게 다룰 만한 가치가 있다. 같은 날 국회 예결특위도 근소세 면제자 비중을 낮추자고 제안하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미국의 정치가이자 저술가였던 벤저민 프랭클린은 1789년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확실한 두 가지는 죽음과 세금”이라고 썼다.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세금의 특성을 압축한 말이다. 국가를 유지하는 재원인 세금의 적정 수준은 예로부터 통치자의 큰 관심사였다.

직장인 절반이 소득세 안 내는 나라

선진국에서는 저소득층을 제외한 국민의 소득세 납부를 당연하게 여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소득세 면제율은 대체로 20% 안팎이다. 일본 15.8%, 독일 19.8%, 캐나다 22.6%이고 미국은 조금 더 높은 32.9%다.

한국도 건국 후 극빈층 외에는 많든 적든 근로소득세를 내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폈다. 1997년 근소세 면제자 비율은 32%대로 요즘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정부가 소득세 면세점을 잇달아 높이고 각종 공제혜택을 늘리면서 2005년 48.7%로 높아졌다. 노무현 정부 후반부터 다시 시작된 면세자 축소 노력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초반까지 이어졌다. 2013년 소득에 대한 연말정산에서 근소세 면제자 비율은 32.4%로 내려갔다.

2014년 소득분부터 적용된 개정 세법과 2015년 초의 연말정산 소동은 이런 노력들을 수포로 만들었다.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꾼 개정 세법은 고소득층과 상위 중산층의 세 부담을 늘리고 더 많은 납세자의 부담을 줄였지만 기존 납세자 중 상당수를 면세자로 바꾸는 부작용도 낳았다. 이런데도 정치권은 대다수 직장인의 세금 부담이 급증하는 ‘세금 폭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화들짝 놀란 정부는 작년 4월 근로소득 세액공제 확대 등의 보완대책을 쏟아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근로자 면세자 비율은 1년 만에 48.1%로 15.7%포인트 치솟았고 면세자 수는 271만 명 늘었다. 직장인 1669만 명 중 802만 명이 연말정산을 한 뒤 한 푼도 소득세를 내지 않았다. 과세 기반 확충 노력은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곽태원 서강대 명예교수는 “소득순위가 전체 근로소득자의 50%에 근접한 사람들이 소득세를 내지 않고, 소득세 면제가 또 다른 ‘무상급식 도시락’이 돼 중산층까지 이것을 탐한다면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라고 진단한다. 소득세 무임승차의 양산은 ‘모든 국민은 납세의 의무를 진다’는 헌법 38조도 무색하게 한다.

왜곡된 담세 구조 바로잡아야


한번 도입된 비과세와 감면을 없애려면 ‘기득권의 저항’이 만만찮다. 일몰(日沒) 규정까지 있는 신용카드 소득공제의 폐지론이 나올 때마다 반발 움직임이 나타나 계속 기한을 연장한 것이 하나의 사례다. 나도 연말정산 때마다 신용카드 공제 혜택을 보고 있지만 제도의 폐지나 축소가 면세자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포기할 용의가 있다.

현재의 소득세 담세구조는 누가 봐도 왜곡됐다. 연봉 2000만 원을 넘는 직장인이라면 조금이라도 소득세를 내도록 세제를 개편하는 게 바람직하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내 집을 장만하고 세금을 내야 애국심이 생긴다”고 했다. 굳이 애국심까지 내세우지 않더라도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근소세 면제율 48%’의 비정상은 바로잡아야 한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소득세 감면#근로소득자#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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