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8월 9일 손기정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에는 2위로 골인한 어니스트 하퍼의 도움이 컸다. 하퍼는 초반에 오버페이스하는 손기정에게 “슬로, 세이브(slow, save)”라고 소리치며 손짓했다. 손기정은 그와 보조를 맞춰 달리다 막판 스퍼트로 우승했다. 당시 3위를 한 남승룡이 작전상 손기정의 페이스 조절을 도왔지만 하퍼도 숨은 조력자 역할을 한 셈이었다.
▷러닝메이트는 경마에서 우승 후보 말이 평소 훈련할 때 옆에서 같이 뛰어 주는 말을 뜻한다. 최고와 연습하다 보니 러닝메이트의 실력도 만만찮다. 훈련을 돕는 말이 실제 우승까지 하는 일은 드물지만 인생에서는 이런 역전극이 종종 벌어진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영조,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우승자 에이블 키루이는 조연으로 시작해 주연을 꿰찼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를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로 정했다.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팀 케인 상원의원을 낙점할 가능성이 높다. 펜스는 ‘트럼프의 단점 보완’이, 케인은 ‘힐러리의 장점 강화’가 역할이다. 펜스는 트럼프의 반(反)무슬림 정책을 비판하는 합리주의자이면서 30년 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막말꾼에 3번이나 결혼한 트럼프와 너무 다르다. 외교 전문가인 케인은 국무장관을 지낸 클린턴과 최적의 조합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당시 부통령이었던 존 낸스 가너는 “이 자리는 오줌통만도 못하다”고 했지만 이번에는 자리 값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도 개헌을 하면 부통령제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부통령은 차기를 노리기 때문에 현 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꼭 부통령 러닝메이트가 아니더라도 대통령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비공식 러닝메이트는 필요하다. 자격 요건은 여론을 가감 없이 대통령에게 전달할 수 있는 용기. 박근혜 대통령이 ‘민중은 개돼지’ 발언에 계속 침묵하는 것은 이런 조력자가 정부 내에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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