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도 사회도 신뢰가 작동않는 대한민국
신뢰란, 인문적 높이에 있는 성숙한 인격이라야 발휘할 수 있는 선진적 활동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경제와 국방을 튼튼히 하고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 정치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제자 자공이 그 가운데서 어쩔 수 없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인지를 묻자 공자는 국방을 든다. 그 다음 포기할 수 있는 것을 재차 묻자 경제라고 말한다. 상식적으로 경제와 국방은 따로 있지 않은데, 굳이 대화를 이리 끌고 가는 것은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공자는 신뢰가 없다면 나라는 서 있지 못한다는 뜻을 피력하고 싶어 하였다. 신뢰를 국가의 가장 근본적인 조건이자 가장 높은 차원의 힘으로 치는 것이다. 수준 높은 나라는 수준 높은 시선으로 운용되는데, 그것이 ‘신뢰’이다.
‘신뢰’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어디에도 신뢰가 작동되지 않는다. 모두 불신의 주체이면서 상대만 탓한다. 불신의 사회요, 불신의 정치다. 그런데 누구나 쉽게 이해하는 이 ‘신뢰’가 우리에게는 왜 실현되지 않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단어는 매우 쉽지만, 수행하는 일이 우리의 능력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공자가 든 국가의 요체 3가지 가운데 경제와 국방은 구체적이지만, 신뢰는 그것들과 달리 추상적이고 윤리적이며 가치적인 것이다. 경제와 국방은 현장에서 만져지는 것이지만, 신뢰는 아직 당도하지 않거나 드러나지 않는 것을 깊이 확신할 때만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 아직 오지 않은 것, 그러나 작용력이 있는 그런 것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신뢰를 실현하기는 힘들다.
중진국이나 후진국은 선진국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에 익숙하므로 항상 이미 있는 길을 가는 삶을 산다. 이미 있는 것들은 다 구체적이다. 선진국은 없는 길을 만들거나 열면서 간다. 아직 오지 않은 빛을 끌어당기려는 습관은 언제나 구체적인 사실 너머를 들여다보려는 습관으로 확장된다. ‘신뢰’란 아직 당도하지 않은 것을 확신하고 또 그것들을 추구하는 습관이 있을 때만 실현될 수 있다. 그렇다면, 후진국보다는 선진국 태도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선진국이 비교적 신뢰 사회이고, 후진국이나 중진국이 선진국에 비해 덜 신뢰 사회인 이유다.
후진국형 재난이 끊이질 않는다. 왜 그런가. 나라가 후진국적으로 관리되기 때문이다. 후진국형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그 원인 분석은 항상 세 가지로 압축된다. 안전 불감증, 준비 소홀 그리고 훈련 부족! 안전, 준비, 훈련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세 가지만 지켜진다면 후진국형 재난이 막아진다는데, 엄청난 일들을 겪고 나서도 왜 우리는 지금까지 쉽고도 쉬운 이것들을 해내지 못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단어는 매우 쉬워 보이지만, 우리의 현재 능력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신뢰’와 마찬가지로 ‘안전’, ‘준비’ 그리고 ‘훈련’도 모두 다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이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예비하는 일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예민하게 반응하는 습관이 준비되지 않으면 그것들을 실행할 수 없다. 후진국형 재난이 마무리되고 나면 또 분석 기사들이 나오는데, 대부분 땜질처방이나 대증요법으로 적당히 정리하였을 뿐임을 비판하는 내용들이다. 땜질처방이나 대증요법은 근본적이거나 원리적인 해결이 아니라 임시변통적인 눈가림이다.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으로 드러나야만 겨우 움직이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행태이다.
그래서 ‘신뢰’란 분리되고 단독적인 어떤 기능이 아니라 비교적 높은 차원에서 단련된 성숙한 인격이라야 발휘할 수 있는 덕목이다. 비교적 높은 그 차원을 우리는 인문적인 높이라고 말한다. 문화적이거나 예술적인 높이라고 해도 된다. 이 높이를 단순하게 힐링을 제공하는 것으로나 지적인 향유의 대상으로 다루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것은 우리를 수준 높고 지배적인 삶으로 인도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신뢰’, ‘안전’, ‘준비’, ‘훈련’, ‘창의’, ‘상상’, ‘선도’, ‘선진’, ‘비전’, ‘꿈’, ‘배려’, ‘타협’, ‘독립’, ‘성숙’, ‘자존감’, ‘윤리’ 등등이 모두 동등한 높이에서 자리를 잡는다. 결국 ‘신뢰’도 인문적인 높이에 있는 성숙한 인격이라야 발휘할 수 있는 선진적인 활동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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