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푸른빛을 내뿜던 외관은 탁한 하늘색으로 빛이 바랬다. 표지에 적힌 ‘우편투표함’이란 글씨는 세월을 머금은 채 잉크가 흐릿하게 번졌다. 울퉁불퉁 찌그러진 상판은 ‘이 물건’이 겪은 굴곡진 사연을 표현했다.
29년 동안 봉인됐던 ‘구로을 투표함’이 21일 오전 열렸다. 서울 종로구 선거연수원 대강당에서는 1987년 13대 대통령선거 당일부터 지금까지 베일에 싸여 있던 ‘구로을 우편투표함 개함·계표식’이 진행됐다.
이른바 ‘구로을 투표함 사건’은 13대 대선 투표가 진행된 1987년 12월 1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오전 11시 반경 서울 구로을 선거관리위원들이 트럭에 부재자 투표함을 싣고 개표소로 가기 위해 구로구청을 나설 때 “투표함이 외부로 반출된다”는 제보를 받고 현장에 온 시민들이 트럭을 둘러쌌다. 시민들은 4325명의 부재자 투표가 담긴 투표함을 발견하고 이를 부정투표함으로 의심했다. 이어 구로구청 3층 선관위 사무실에서 용도를 알 수 없는 투표함 한 개를 발견했다. ‘투표함 바꿔치기’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구로구청에는 시민 1000여 명이 모였다. 선관위 사무실을 점거한 시민들은 점거 44시간 만인 18일 오전 경찰에 진압됐다. 부정투표함으로 낙인찍힌 구로을 투표함은 선관위가 무효 처리했고 결국 열리지 못했다. 투표함은 이후 20년 동안 구로구 선관위에 보관되다 2007년 중앙선관위 수장고로 옮겨졌다.
한국정치학회와 중앙선관위는 최근 민주화운동 역사에서 ‘판도라의 상자’처럼 여겨지던 구로을 투표함을 열기로 결정했다. 강원택 한국정치학회 회장은 “내년 1987년 민주화운동 30주년을 앞두고 부정선거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날 투표함을 여는 과정에서 진통도 있었다. ‘구로구청 부정선거 항의투쟁 동지회’ 소속 회원 일부는 진행을 막고 “선관위가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논란 끝에 10시 10분경 투표함의 뚜껑이 열렸다.
오후 2시경 마무리된 계표 결과 당시 기호 1번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가 전체 4325표 중 3133표(72.4%)를 얻었다. 이어 △3번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 575표(13.3%) △2번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 404표(9.3%) △4번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후보 130표(3.0%) 순이었다. 당시 노 후보는 총 36.6%의 득표율로 김영삼(28.0%), 김대중 후보(27.0%)를 누르고 당선됐다. 구로을만 놓고 보면 득표율에서 김대중 후보(35.7%)가 오히려 노태우(28.1%), 김영삼(25.4%), 김종필 후보(10.8%)를 앞섰다. 다만 부재자 투표에선 당시 노 후보의 득표율이 상대 후보들보다 크게 높았다. 실제 서울 지역 혼합개표(당시는 부재자 투표함을 일반 투표함 한 개와 혼합해 개표) 결과는 노태우(61.6%), 김대중(18.0%), 김영삼 후보(17.3%) 순으로 이번에 집계된 구로을 부재자 투표 결과와 큰 차이가 없었다.
투표함은 열렸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국정치학회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연구 결과와 당시 사건 당사자들과의 심층 인터뷰, 투표함 및 관련 기록 분석 결과 등을 종합해 내년에 보고서를 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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