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집 동네 4곳 남북주민 첫 실태조사]
‘소통 어렵다’ 北 69%-南 63%… 北주민 24% “南주민이 날 무시”
“주민배제 탈북시설! 밀실야합 결사반대!”
새 아파트 입주가 한창인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 곳곳에는 이런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통일부의 ‘남북통합문화센터’ 건립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마곡지구 입주자대표연합회 명의로 뿌려진 호소문에는 “우리의 보금자리가 처참히 짓밟히고 있다”며 “북한이탈주민 편익시설 건립 결사반대 탄원을 추진하니 마곡 입주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동참을 호소한다”고 적혀 있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대기근이 벌어져 대량 탈북 사태가 시작된 지 20년이 넘었다. 그동안 남쪽에는 3만 명의 탈북자가 입국해 지역마다 정착해 살고 있다. 하지만 탈북민을 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여전히 싸늘하다.
정부는 ‘통일 대박’을 이야기하지만 우리 사회는 북한 체제가 싫어서 탈북한 3만 명을 보듬어 안기도 버거운 듯하다. 탈북민 정착 시설은 혐오시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달 영국 국민이 유럽연합(EU) 탈퇴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난민 유입 반대였다. 오늘날 한반도의 난민은 탈북민이다. 우리는 지금 탈북민과 한 동네에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함께 살 준비가 돼 있는 것일까.
해답을 찾기 위해 동아일보와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은 5, 6월 두 달간 대표적인 탈북민 밀집 지역인 서울 강서구 가양동, 노원구 중계동, 양천구 신정동, 인천 남동구 논현동 남북 출신 주민 404명을 대상으로 남북 주민 통합 실태를 조사했다. 지역별로 남북 출신 주민 50명씩(논현동은 52명씩) 설문 조사했다. 탈북민 밀집 지역에서 남북 출신 주민을 상대로 통합 현실을 조사한 것은 처음이다.
조사 결과 남북 출신 주민 간 대화 경험이 있는 주민 가운데 북한 출신 주민(탈북민)의 69.1%, 남한 출신 주민의 62.7%가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남측 주민이 탈북민을 ‘나와 같은 국민’으로 보는 데 훨씬 인색했다. 그동안 정부의 탈북민 정착 정책 초점이 경제적 지원에 맞춰졌지만 이제는 주민 통합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해야 할 때임을 보여준다.
▼ “빨갱이가 그렇지” “색안경 쓰고 쳐다봐”… 동네안 ‘38선’ ▼
이달 중순 어느 날 오후 4시경 탈북민 1400여 명이 거주하는 인천 남동구 논현동의 한 아파트단지 어린이집 앞. 아이들을 데리러 온 30대 전후의 학부모들이 속속 모여 들었다. 어느 동네에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광경이다. 탈북민 집단 거주지인 만큼 이색적인 북한 억양도 들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학부모 가운데 북한 말씨를 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어린이집에 남한, 북한 출신 부모를 둔 애들이 모두 다니긴 하지만 등·하원할 때 어머니들은 끼리끼리 나뉘어요. 탈북 엄마들은 경계심이 있는지, 아니면 자존심이 강해서 그런지 몰라도 쉽게 친해지기 어려워요. 내가 북한 출신 엄마에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면 피해버리거나 그냥 가버려요. 애들은 또래라 같이 노는데….”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1년 4개월이 됐다는 신새롬 씨(30)는 탈북민 엄마들의 인상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엄마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탈북민 동네엔 가지 마”
어린이집 풍경만 놓고 보면 이 동네에선 남한 주민과 탈북민이 여전히 다른 공간에 사는 것 같다. 과연 탈북민이 다른 사람을 경계하거나 자존심이 강해서일까.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1년 반이 됐다는 한 30대 엄마의 얘기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저는 새터민에 대해 생각이 그렇게 좋지가 않아요. 저 앞의 일반 아파트 엄마들이 여기는 발도 붙이지 말라고 애들에게 말해요. 그래서 나도 여기 온 지 이제 1년 반 됐는데 다른 아파트 애기 엄마들과 친구하기가 힘들었어요. 유독 여기가 인식이 그래서…. 애들도 놀이터에서 놀 때 발음이 어눌하면 아예 배제하고 놀아요. 엄마들도 그런 애들에게 ‘새터민이야, 아니야’ 하고 확인해요.”
신 씨도 거들었다.
“애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편이 갈려 있어요. 노인정에서도 새터민 어르신들이 남한 어르신들과 어울리기 어려우니까 아예 따로 노인정을 만들기도 했어요.”
서로 어울리지 못하니 남한 주민과 탈북민 사이엔 감정의 골만 더욱 깊어졌다.
“아침에 어린이 놀이터를 지나가는데 누가 아파트에서 쓰레기봉투를 던져 냄새가 너무 심했어요. 꼭 탈북민이 했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유독 다른 아파트에 비해 몰상식한 사람이 많으니 의심이 가는 거죠.” 익명을 요구한 30대 주부의 말이다.
그렇다면 탈북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논현동 아파트에서 6년째 살고 있는 한국 입국 16년 차인 장성근 씨(35)는 쓰레기 문제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다.
“탈북민 중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곳 임대아파트엔 장애인, 치매 노인도 많이 사는데 그런 분들이 쓰레기 던지는 것도 제가 여러 번 봤어요. 남한 사람들도 쓰레기 불법 투기를 하는데 항상 탈북민만 손가락질을 받아요.”
슈퍼에서 일하는 50대 탈북 여성 최진옥(가명) 씨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사람들은 우릴 세금 안 내고 자기들 세금이나 축내는 사람처럼 봐요. 우리도 세금 내면서 사는데 말이죠. 똑같은 상황이라도 우릴 대하는 게 달라요. 열심히 일하면 ‘쫓겨나지 않으려고 악을 쓴다’고 말하고, 무거운 걸 나르다 ‘아이고, 힘들어’ 하면 ‘이럴 거면 북한에 있지 여기 왜 왔느냐’고 말해요. 그럴 때면 정말 상처를 받습니다.”
최 씨는 한국에 온 지 10년이나 됐지만 여전히 한국 사람을 깊이 사귀기가 무섭다고 했다. 그와 함께 일하는 40대 탈북 여성 김영란(가명) 씨도 “본토(남한) 사람들이 못사는 것은 ‘그럴 수 있지’ 하면서도 탈북민이 못살면 꼭 게으른 사람 보듯이 한다”며 거들었다.
이런 감정의 골은 비단 논현동만의 일은 아니었다. 이번 공동조사에서 탈북민 밀집 지역에 사는 데 대한 만족도가 낮은 이유로 남한 출신 주민이 가장 많이 꼽은 점 역시 남북 주민 간 생활 방식 차이로 인한 갈등(42.5%)이었다. 탈북민은 탈북민 밀집 지역에 산다는 주변의 부정적 인식(41.5%)을 가장 많이 꼽았다.
“북한 여성들은 지금까지 꾸며보지 못했으니 여기 와선 옷차림에 신경을 많이 써요. 그러다 보니 밤에 동네 가까운 곳에 나갈 때에도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는 경우가 많죠. 같은 탈북민은 그냥 편하게 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기 사람들은 북한 여자들은 밤에도 치장하고 나간다고 이상한 소문을 퍼뜨려요.” 한 탈북민의 하소연이다.
남한 주민이 먼저 마음을 열어야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북 주민들이 어울리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비율은 북한 출신 주민(24%)이 남한 출신 주민(6.8%)보다 훨씬 높았다. 탈북민은 4명 가운데 1명꼴로 남한 주민에게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무시당한다고 느끼니 탈북민은 먼저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남한 출신 주민은 굳이 탈북민과 교류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다가가지 않는 것이다.
탈북민은 편견과 차별을 넘어 증오의 시선까지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양천구 신월동에 사는 한국 입국 13년 차인 마순희 씨(60대)는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의 일을 잊지 못한다.
“집에서 TV 뉴스로 사건을 보고 단골 미용실에 갔는데, 안에 있던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다가 입을 다 닫더군요. 내가 앉아서 머리 하는데 할머니들, 젊은 여성들이 들어와서 ‘연평도 봤냐. 빨갱이들은 변하지 않는다. 탈북자들이 그렇게 많이 오는데 그 속을 어떻게 알겠어’라고 하는 겁니다. 그 일이 있은 뒤에 다시 그 미용실을 가려니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미용실을 바꿨어요.”
함북 청진에서 온 30대 탈북 여성 역시 당시 비슷한 일을 겪었다. “회사에 나갔더니 나이 든 아줌마들이 ‘너희 북한 빨갱이들은 다 죽여야 돼’ 하고 면전에서 말했던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남한 주민들이 탈북민을 ‘나와 같은 국민’으로 보는 데 훨씬 인색하고 불신한다는 점은 이번 조사 결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남한 주민들은 북한 출신 주민을 친구로 두는 데는 82.4%가 찬성했지만 배우자로 삼는 것에는 반대가 57.6%나 됐고, 찬성은 절반 수준인 42.4%로 줄었다. 자신의 자녀가 북한 출신 주민을 친구로 두는 것에는 81.9%가 찬성했지만 배우자로 삼는 것에는 찬성이 절반 수준인 44%로 줄고 반대가 56%로 크게 증가했다.
북한 출신 주민은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 90.5%가 남한 출신 주민을 친구로 두는 데에 찬성했고, 배우자로 삼는 것에도 74%가 찬성했다. 자신의 자녀가 남한 출신 주민을 친구로 삼는 데에 98%가 찬성했고 배우자로 삼는 것에도 90.2%가 찬성했다.
동아일보와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의 공동 조사 결과는 남북 출신 주민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교류하는 탈북민 밀집 지역에서 나온 것이어서 더 주목된다. 그리고 남북 출신 주민 간 진정한 통합은 아직 갈 길이 멀고, 탈북민보다는 남한 주민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공동기획을 담당한 남북하나재단 한윤석 차장은 “조사 결과 탈북민들이 보여주는 통합 노력에 비해 한국 사회의 포용력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며 “탈북민에 대한 포용력은 통일 이후 북한 주민과의 통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우리 사회가 탈북민에 대해 마음을 더 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남북엄마 공동 육아… 땀 흘리며 공동작업… 허물어진 ‘38선’ ▼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
이번 취재 과정에선 갈등만 목격된 것이 아니다. 한국 주민과 탈북민이 함께 어울려 화합을 만들어내는 현장도 곳곳에 있었다. 서로 의식적으로 다가가고 노력하면 두 집단 사이의 간극은 결코 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서울 양천구 신월6동의 한 주택가 20평대 빌라엔 일주일에 몇 차례씩 남한과 북한 출신 엄마들이 함께 모인다. 이 집의 이름은 ‘친정집’이다. 이곳에선 남북한 엄마들이 서로 마음을 합쳐 만들어가는 공동육아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오후가 되면 서너 살 아이에서부터 초등학생들까지 엄마를 따라 이곳에 모여 형, 동생, 언니, 누나, 친구가 된다. 엄마들은 엄마들대로 글쓰기 모임, 발표 모임 등을 진행한다. 이곳에서 만난 회령 출신의 40대 탈북 여성은 “제가 사투리를 써도 이곳 엄마들은 잘 들어주니 마음이 편하다”며 “한국에 와서 홀로 너무 힘들었는데 이곳에선 친정집처럼 푸념도 할 수 있어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공동육아 프로그램을 계획한 윤은정 사무처장은 “이 사회에서 남한 사람과 탈북자들이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지 않고 어울려 살면 어떨까 싶어 지난해 5월 모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공동체 운영비용은 남북하나재단의 후원을 받는다.
물론 처음부터 쉽게 어울렸던 것은 아니다.
“탈북한 지 얼마 안 된 한 아이가 북한 사투리가 심하니 애들이 자꾸 그 아이를 따돌리는 거예요. 애들이어도 참 밉더라고요. 왜 따돌리냐고 물었더니 ‘쟤는 전쟁을 하는 나쁜 나라에서 왔잖아요’라고 답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을 모아 놓고 엄마 아빠의 고향을 다 말하게 했어요. 중국도 있고, 강원도도 있고 다 달랐어요. 아이들에게 부모들은 다 다른 고향을 갖고 있다고 차근차근 설명했더니 이후 애들이 달라졌어요.”
모임에 참가한 주부 김하나 씨(37)는 “내가 여기 다닌다고 하니 주변에서 ‘북한 사람들은 어때’라고 물어요. 애들은 간식 주는 어른이 남한 사람인지 탈북민인지 가리지 않는데 어른들이 참 부끄러워요”라고 말했다.
‘친정집’과 유사한 프로그램은 곳곳에 있다. 인천 남동구와 서울 노원구 중계동엔 남북 출신들이 어울리는 체육모임이 주말마다 열린다. 논현역 인근 탁구장에 매주 일요일 오후 3시에 모이는 ‘하나코리아핑퐁클럽’도 그중 하나다. 4년째 탁구 모임에 참가하는 김진수 씨(50)는 “처음엔 탈북민을 대하기가 어색했지만 지금은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이웃으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논현동엔 남북 주부들이 함께 모여 의상 디자인과 옷 수선을 함께 해내는 작업 공간도 있고, 남북 노인들이 함께 어울리는 ‘하나경로대학’도 운영되고 있다. 먼저 노력하는 탈북민들
남북 주민들의 통합은 서로 한 공간에 어울려 지낸다고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탈북민 중에는 먼저 열심히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면 남쪽 주민들도 자연히 우리에게 마음을 열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다.
서울 강서구 화곡4동에 문을 연 카페 ‘더치숲’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이 카페는 지난해 4월 탈북민 4명이 함께 문을 열었다. 카페에서 만난 김인실 씨(58)는 “서비스직이라 어떻게 하면 손님의 요구를 잘 들어줄 수 있을까 고민도 하고 매일 인사하는 법을 익히게 되니 남한식으로 사람을 대하는 법을 알게 됐고, 그러다 보니 손님도 늘고 단골도 생겨났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탈북자들이 나랏돈을 받고 산다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이니 어느새 그런 사람들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해 탈북민에 대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사례도 많다. 서울 양천구과 구로구 등지에서 지역 봉사에 열심인 탈북민 봉사단체 ‘소망두레봉사단’도 그중 하나다. 2010년 2월 탈북 여성 6명이 모여 활동을 시작한 모임은 지금은 참가자가 20명이 넘는다. 하는 일도 노인 목욕 봉사, 홀몸노인 가구 도배,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책 읽어 주기, 신규 전입 탈북자의 집 청소해주기 등 다양하다. 지난해 12월엔 지역 노인 200여 명을 초청해 동지 팥죽을 대접하는 봉사도 했다. 이 단체는 2011년 남북하나재단 우수자원봉사단 우수상, 2014년 10월 서울시 봉사상 단체 부문 우수상 등을 받았다.
탈북민이 동네에서 주민에게 먼저 인사하고 이웃처럼 다가가는 모습만 보여도 인식은 많이 달라진다. 양천구 신정동 학마을아파트에서 16년째 살고 있는 60대 주부는 “나를 보면 탈북민 이웃들이 먼저 인사하고 지나가고 이야기도 걸어주고 하니 아주 친해졌다. 초등학생인 손녀딸도 새터민 또래 아이들하고 어울려 논다”고 말했다. 그는 “자녀가 한 학교에 다니는 30, 40대 학부모들은 출신을 가리지 않고 서로 친해져서 모임도 하고 있다”며 “지내 보니 새터민도 우리와 똑같더라”라고 평가했다.
윤완준 zeitung@donga.com·주성하 기자 변수연 인턴기자 연세대 중어중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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