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의 新냉전 격화, 정부간 갈등도 증폭
민간과 지방정부는 그럴 필요 없어
마음을 열고 주도권 위해 지자체와 민간이 나서길
지난 주말 포항을 다녀왔다.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몇몇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자매결연이나 상호방문 등 지자체 간 국제협력은 새로운 게 아니다. 그런데 이 행사는 포항시를 비롯해 중국의 훈춘 시, 러시아의 코르사코프 시 등 동해에 연한 지자체들이 환동해권의 협력과 번영을 만들어 나가자는 취지로 이뤄진 것이어서 참신하고 반가웠다. 물론 아직은 걸음마 단계로 보인다.
동해는 5개국이 접해 있으면서도 각국 간의 긴장과 갈등이 끊임없이 흐르는 냉전의 바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물류 이동이 늘어나긴 했지만,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다시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도 중단되어 관련 지자체들의 고민이 깊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북아는 최근 신냉전 상태로 회귀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과 한국의 사드 배치, 남중국해와 센카쿠열도, 일본군 위안부와 역사 교과서 등등 참으로 어려운 난제가 해결되긴커녕 오히려 더 심화되고 있다. 여기에 역내 질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도 더욱 커져가고 있다. 차기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든 자국 중심주의의 거센 풍랑이 예고된다.
각국 정부는 갈등 속에서 자국의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 차원에서 벌어지는 외교 행위는 갈등 해소보다 오히려 증폭을 낳고 있다. 지금과 같이 동북아 국가들 간에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는 무조건 자국의 국가 이익을 내세울 수밖에 없을 것이고, 강경한 안보 논리가 국내적으로도 지지를 받기 때문이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국익을 구현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정책이 수립되고 실행된다. 그런데 그것은 상대가 있다. 상대의 뜻이 내 뜻과 같은 경우는 거의 없다. 일종의 제로섬과 같은 상태에 있다. 내게 유리하면 상대에게는 꼭 그만큼은 아니라도 불리하다. 그래서 갈등을 피하기 어렵고, 주고받기는 선택이 아니다. 또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바뀔 수 있고, 이것은 상대에게 혼란을 준다.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이런 일들이 정부 차원에서 벌어지기 쉽다.
그러나 지자체나 민간의 트랙 투 차원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심각한 안보나 외교 문제를 거론할 필요도 없으며, 만나서 함께 상생하고 호혜적인 협력을 얘기하면 되는 것이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교류를 하면 된다. 협력해야 할 분야가 실질적이고, 구체적이기 때문에 지속성을 띨 수 있다. 교류·협력이 지속되고 활성화되면 동북아 각국 시민들 간의 이해와 공감대가 증진될 것이다.
사실 동북아 각국은 경제 사회 문화의 측면에서는 상당히 긴밀한 관계다. 그럼에도 이것이 정치 외교 안보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 모순이지만, 현실이다. 그리고 트랙 투 교류가 많아진다고 해서, 중앙정부의 정책이 바뀌진 않는다. 이를 감안해도 트랙 투 교류는 매우 중요하다.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환경이나 에너지, 물류나 관광 등 동북아 각국이 보다 용이하게 협력할 수 있는 분야에서 우선적으로 교류하자는 것이다. 정상 외교나 고위급 외교, 공공 외교도 중요하지만, 트랙 투 외교와 교류도 중요하다.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세 가지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첫째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관련 부처들 간의 협업이 이뤄져야 한다. 각 분야를 관장하는 정부 부처들과 외교부가 협업해야 한다. 보다 큰 틀에서 트랙 투 교류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둘째는 트랙 투 교류를 위한 민관 거버넌스의 구축이다. 우리나라는 이것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 포항시의 노력도 포항시 자체의 노력이지 중앙정부와는 상관이 없다. 그러니 일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지자체 간 협력은 어디까지나 지자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원을 위한 거버넌스는 필요하다.
셋째, 관련 행위자들 간의 소통이다. 소통은 우선 만나야 하고, 상대의 얘기를 경청하고,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는 것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건 열린 마음이다. 단지 사람과 물류만 오고가는 그런 교류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면 준비하고 추진하는 주체들 간의 진정한 소통부터 필요하다.
동해를 ‘동북아의 지중해’로 만들자는 포항시의 포부가 이뤄지기 위해서도, 동북아의 평화와 협력을 진작시키려는 한국의 이니셔티브가 빛을 발하기 위해서도 지자체와 민간이 나서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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