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할 때마다 인적 쇄신 방안을 내놨다. 박 대통령의 휴가 뒤 첫 국무회의가 비상한 관심을 모은 것도 이 때문이다. 안보·경제·국론분열의 복합 위기에 ‘민중은 개돼지’라는 고위 공직자의 망언, 공직 기강 해이,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논란까지 겹쳐 조각(組閣) 수준의 전면 개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어제 박 대통령은 우 수석의 거취나 정국 수습용 개각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않고 “우리 경제 회복의 기운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을 해 국민을 실망시켰다.
박 대통령은 “2분기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2%로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에 근접하는 수준을 기록했다”며 소비-투자-고용의 선순환 구조가 정착된 것은 ‘매우 희망적인 신호’라고 말했다. 그제 2400여 개 제조업체 중 절반이 “지금 수익원은 사양화 단계”라고 답한 대한상공회의소 조사 결과나 디플레이션 우려가 나오는 것과는 딴판의 현실 인식이다. 대통령은 추가경정예산안의 조속한 국회 처리를 당부하기 위해 장밋빛 경제전망을 말했을지 모르나 4·13총선 전에 국회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책상을 쳤던 ‘야당 책임론’을 또 시작한 느낌이다.
국민의 삶과 괴리된 인식을 대통령이 갖게 된 것이 경제 부처에서 비서실을 통해 올라오는 보고서에 매몰된 때문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경기 성남시 판교 창조경제 밸리 방문 사례를 들면서 “창조경제 활성화로 창업 벤처 붐이 본격화됐다”고 했지만 동의할 경제 전문가가 있을까. 참모들이 일부 ‘잘나가는’ 현장 중심으로 대통령 행차 일정을 짜서 전체적 상황을 모르게 하는 것은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일이다. 수출이 7월까지 19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음에도 ‘일시적 현상’이라고 설명하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어떻게 청와대 보고서를 써 올릴지는 안 봐도 훤하다.
박 대통령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사드 배치에 대해 “저도 가슴 시릴 만큼 아프게 부모님을 잃었다”며 ‘감성 언어’로 사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작금의 국론 분열상이 벌어지기 전에 군통수권자로서 좀 더 선제적, 적극적으로 대(對)국민 설득에 나섰다면 대통령 지적처럼 ‘괴담과 유언비어로 안보의 근간마저 위태롭게 흔들리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추경도 타이밍이 늦으면 효과가 반감되듯, 대통령의 설득도 실기(失期)하면 울림이 없다. 대통령은 “국회의원과 단체장도 직접 만나겠다”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성주 방문이나 성주 주민들의 청와대 초청을 통해 호소할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이 어제 우 수석 거취에 입을 다문 것은 여론에 귀를 닫고 ‘일방통행 식 국정 운영’을 계속하겠다는 통보로 들린다. 우 수석은 진경준 검사장 검증 실패만으로도 문책 대상이다. 설령 개각을 한다 해도 우 수석의 인사 검증은 신뢰하기 힘든 상황이됐다. 박 대통령의 최근 행보는 민심을 도외시한 채 ‘마이 웨이’로 일관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말을 연상케 한다. 국민은 박 대통령이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길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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