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경쟁적으로 쏟아낸 세법 개정안이 근본적인 조세 개편 방안은 되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현행 제도를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소득세 감면 축소,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제도 폐지 등 민감한 쟁점 사안을 차기 정권으로 넘기려 한다는 비난을 받는다. 더민주당은 과다한 사내유보금을 쌓아놓은 대기업과 고소득을 올리는 ‘슈퍼리치’를 상대로 하는 증세안을 내놓아 ‘부자증세’ 논란을 재점화했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세금 정책에 대한 ‘땜질 처방’을 막고 중장기적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안과 야당안에 대해 철저하고 객관적인 검증을 벌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여야 모두 면세자 축소에는 눈감아
더민주당은 최근 소득세에 과세표준 5억 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세율 41%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소득세 최고세율 38%보다 3%포인트 높은 수치다. 또 연소득 1억5000만 원 이상 소득자에 대해선 세액 공제·감면 한도를 과세표준 대비 7%로 제한하기로 했다.
일각에선 소득 불평등 개선이란 측면에서 더민주당의 세법 개정 방향이 제대로 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상위 1%에 대한 소득집중도는 2007년 11.08%에서 2012년 11.66%로 올랐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득 5억 원 이상은 상위 0.5%의 초고소득층인데, 그 계층이 가져가는 소득 비중이 외환위기 이후 많이 늘었다”며 “고통분담 차원에서라도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부 증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안과 마찬가지로 야당안도 면세자를 줄일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보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한국에선 2014년 기준으로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면세자가 전체 근로소득자의 48.1%(802만 명)에 이른다. 기형적 조세 구조로 불릴 만한 상태다. 게다가 표심을 의식한 정부·여당이 각종 비과세와 감면 혜택을 줄이지 못한 상황에서 더민주당 역시 신용카드 소득공제 일몰연장에 찬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야당이 내놓은 것도 근본적인 세제 개혁은 아니라고 본다”며 “저소득층이 담뱃세를 부담했으니 고소득층도 그에 상응하는 세 부담을 져야 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 표심이 뭐길래
더민주당은 박근혜, 이명박 정부가 주장한 ‘낙수효과’(대기업 성장의 혜택이 저소득층에게 돌아간다는 논리)가 실패로 끝났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법인세와 관련해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 500억 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세율 25% 적용 △〃 5000억 원 초과 구간 최저한세율 17%→19% 인상 △절세용으로 만든 법인에 15%포인트 추가 과세(일병 ‘우병우 방지법’) 등이 포함된 ‘법인세 3종 세트’를 내놓았다.
이에 대해서는 오히려 기업들의 ‘탈(脫)한국 현상’만 부추기고 법인세 인하라는 글로벌 흐름에 거슬러 ‘나 홀로 역주행’을 하는 꼴이 된다는 목소리가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절반인 17개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법인세율을 낮췄다.
이런 이유로 정부·여당은 법인세율 인상보다는 각종 기업 관련 비과세 감면 규정을 정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 역시 매년 특정 정책의 목적 달성을 위해 각종 감면제도를 만들어 내거나 표심을 의식해 기존 제도의 일몰을 연장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올해 정부 세법 개정안에선 상속·증여세 부문은 크게 다뤄지지 않았지만 더민주당이 상속·증여세 증세안을 제시함에 따라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더민주당은 지나친 ‘부(富)의 대물림’을 막기 위해 미성년자에 대한 증여세율을 높이는 연령별 차등 과세를 도입하고, 재벌의 상속·증여세 회피용으로 악용됐던 성실공익법인 제도를 폐지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이에 정부·여당은 노년층에서 청년층으로 부의 이동을 가속화하기 위해서는 상속·증여에 대해 공제 혜택을 늘리거나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김재진 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소득 재분배를 위해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를 추진하는 한편 세원을 넓히기 위한 각종 감면 제도 정비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며 “이에 앞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론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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